정 진 성목사

▲ 정진성 목사
6-7세기 이전까지 세계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였으며, 이들에게 희망과 소망, 그리고 생명을 안겨 주었다. 로마의 박해를 받은 동안교회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국교로 공인된 후에도 국가를 대신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는 역할을 했다. 구빈원도 만들어 식량을 체계적으로 지원했다. 이것이 바로 예수운동이었다.

교황 심플리키우스는 교회 수입의 1/4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쓰도록 규정했다. 또한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리대금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또 제3차 오를레앙 종교회의는 성직자와 집사들이 고리대금업을 못하도록 포고령을 내리는 한편, 착취하는 사업도 금지했다. 이것은 당시 유럽교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유럽교회가 세계로 번져 나갈 수 있었다.

오늘의 교회보다 훨씬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까웠다. 그러나 점차 교회가 부를 축적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부자들과 같은 존재가 되면서, 결국 교회는 반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로 변질되었다. 또한 교회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오늘 텅 빈 유럽교회를 만들어 놓았다. 예수운동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이것은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한국교회는 선교초기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로 자리매김을 했다. 교육사업을 비롯하여 빈민구제사업, 의료사업 등을 통해 선교자원을 만들어 냈다. 한국교회는 세계교회가 놀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세속에 길들여지면서, 유럽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던 교회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사실 한국교회는 봉건시대의 영주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겉으로 예수의 이름을 부르지만, 예수를 등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분열과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등 선교의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최소한 한국교회가 예수의 십자가를 따른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즉 예수운동은 첫째 가난한 사람과 소외된 사람,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는 일이다. 둘째 예수의 삶은 소외된 사람들과 나누는 삶이었다. 셋째 예수는 무력하게 수난을 당하고, 고난 받는 사람들을 섬기는 삶이었다. 넷째 철저하게 하나님 나라와 관련되어 있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복음 선포였다. 다섯째 예수의 삶은 가난한 사람들의 갈망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이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보리떡을 나누어 줌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물질적 욕구에 응했다. 또 병자와 불구자들의 신체적 갈망에 부응했다.

이러한 하나님나라 운동을 통해 예수는, 가난한 백성들을 일 깨웠으며,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운동의 주체가 되도록 했다. 이제 한국교회는 하나님나라 선교의 경쟁력을 갖기 위해 결단해야 한다. 재산이 아까워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부자청년은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했다. 반대로 삭개오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선교를 위해서 내 놓았다.

이제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세계교회는 바리사이파주의에서 벗어나 예수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것만이 죽어서 잔해가 역사적 유물로 남는 것을 피할 수 있으며, 본래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과 소외된 사람,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예장 정통보수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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