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호 관 목사
장로 수난시대가 열렸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요즘 더욱 그렇다. 거물(?) 장로들 덕에 실로 이름도, 빛도 없이 교회를 섬기는 신실한 장로들이 마음고생을 하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고명하신 선배 목사님께서 장로의 고마움을 표하기를‘나는 장로들을 존경 한다네 왜냐하면 나는 돈 받아가며 예수 믿고 장로들은, 교인들도 그렇지만 돈 내고 예수 믿지 않는가? 그뿐인가 교인들과 목사사이에서 욕이라는 욕은 다 먹지, 내가 장로가 되었더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은 때가 많아요.’하던 그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교회에서 특별히 장로교회에 있어서 장로라는 직분은 대단히 소중하고 귀한 직분이다. 우선 장로 직은 집사와 함께 교회에 항존(恒存)하는 직분이다. 실은 목사도 장로의 한 반열이다. 장로교 헌법은“장로에는 두 반열이 있으니 목사와 장로가 있다.”고 했다. 목사는 설교와 치리를 겸하는 장로요, 장로는 목사와 협력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로서 사역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목사라는 장로는 신학교에서 신학 훈련을 받고 총회의 고시(준목 혹은 강도사)를 거쳐서 노회에서 시행하는 목사고시에 합격하면 목사라는 직분을 받는다. 그러나 장로는 다르다. 지교회의 세례교인 총회인 공동의회에서 무기명 투표에 의하여 선출한다. 투표자 2/3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당선자가 된다. 주님을 신실하게 믿고, 교회만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당선 확정되면 상당한 기간 동안 교양훈련을 거쳐서 노회가 시행하는 장로고시에 합격한 사람을 비로소 장로라는 직분에 세워 교인들을 대표하게 한다. 장로가 되려면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한 교회에서 오랜 기간의 공동체생활을 한 자라야 한다. 세례를 받은 후 5년 이상 무흠한 자가 아니면 후보군에도 들지 못한다. 그만큼 당사자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신앙생활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한다는 성경의 제한적 기준에 합당하게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고, 자녀들을 바르게 훈육한 열매가 있어야 한다. 즉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영위하지 않는 자라면 장로 될 생각도 말아야 한다. 어찌 그 뿐인가 사회생활에 있어서 이웃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여부가 중요하다. 신학교에서 일정 기간 동안 교육을 받아서 되는 장로보다 결코 쉽지가 않다.

비리척결 내지는 부패일소라는 소위 사정의 칼바람 앞에 드러난 두 사람이 송구하게도 장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장로님들이 낯을 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장로님들께 응원을 보내는 한편, 그 직분이 얼마나 엄중한가를 환기할 필요가 충분하다. 두 사람 다 나름 교회를 섬기고 사랑했을 것이라는 그 점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부정을 합리화하고 오죽했으면 자살했으랴하는 식의 자위를 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분명 잘못을 범했다. 죄를 지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옷은 단 한 벌도 없다는 그 말에 장로까지 포함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와 목적으로 교회당 안에 특정 장로를 위한 비밀 아지트와 같은 요상한 사무실을 두고 비리의 본거지를 삼았는지 그 교회와 목사는 납득할만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연보함과 회계장부가 부정한 돈 세탁의 가장 안전한 도피성이고 탈세의 기구로 변질되어서야 어찌 지탄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어떤 경우라도 자살은 안 된다. 죽을 힘이 있으면 살아야 한다고 하지를 않았는가? 어떤 생명인들 소중하지 않으랴만 장로로서 그런 극단적인 길을 선택할 자유는 이미 반납하지 않았던가? 경남기업의 전 회장, 자수성가한 사업가로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추앙을 받던 그 장로가 스스로 택한 그 극단의 길은 절대로 잘한 일이 아니다. 지난주일 부활절 아침에 성 장로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교회에 출석했다면 어떤 설교를 들었을까? 아무리 급해도 장로니까 주일에 예배는 드렸어야 하지 않은가? 그랬더라면 그 길로 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별아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결론은 교회는 장로를 잘 세워야 한다는 그것이었다. 돈 주머니가 큰 기업인, 부자라는 그것 때문에 장로로 세우면 세움을 받은 그 사람도, 그 교회도 함께 불행할 수밖에 없다. 장로는 그런 자에게 맡길 직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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