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장로교 신자라면 대체로 소요리문답 1번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문: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일생동안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중요하다. 뜻밖에도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삶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은 주체가 되고 하나님은 객체가 되어, 하나님께서 인간이 만들어 '드리는'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되는 것이다. 심각한 주-객의 전도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요 13:31). 예수께서는 당신의 고난과 수치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사건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평소 우리는 무엇인가 업적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드린다’는 생각을 한다. 큰 교회 지어 ‘드리고’, 큰 사업 ‘하고’, 큰 성과 ‘내고’, 큰 직분 ‘맡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것으로 여긴다. 예수께서 당신의 고난을 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타락한 요인은 바로 소요리문답 1번을 왜곡한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잘못일까?

지난 3월 21일자 경향신문 1,6,7면 ‘못 미더워서, 관심이 없어서 종교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특집기사는 한국교회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물질주의, 성직자들의 추문, 비리, 정의에 대한 불감증, 약자의 탄식 외면, 소비집단으로 변질, 특정 정치집단에 편향된 행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종교를 떠나는 이들이 급속도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종교를 묶어서 다룬 기사이기는 하지만 불신의 중심에 교회가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 세상에 희망을 밝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희망을 가리는 집단이 된 것이다. 교회가 세상을 위해서 유익한 일, 큰일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교회가 세상을 ‘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한 것이 문제이다.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한 일들이 고난이 아닌 자기 영광을 취한 일들이어서 그리 된 것이다. 지금 이 시간도 탁월한 리더십으로 하나님께 영광 ‘드리기’ 위해 큰일을 해낸 사람들의 뻔뻔함이 웅변하는 현상 아니겠는가? .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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