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의 범죄행위가 교회를 넘어 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목사의 범죄는 이제 일상화되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언론매체는 교회내부에서 일어나는 목사와 교인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 교회와 지역사회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 심층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는 특정종교에 대한 언론탄압으로 치부해 왔다.

헌데 최근에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목사의 범죄행위는 일반인과 다를 것이 없을 정도의 살인, 절도, 사기, 성범죄 등 다양해졌다. 목사가 주말에는 거룩한 목사로서 강단에서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를 말라’, ‘간음하지 말라’고 교인들을 향해 외친다. 그리고 평일에는 세상에 나와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남의 것을 탐내고, 살인한다.

수년전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가담한 기독교은행설립을 미끼로 작은교회 교인과 목사들을 울린 사건을 비롯하여 강남의 ㅈ교회 다단계 사건으로 인한 6명의 목사 및 관계자 구속사건은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 사건 역시 한국교회 중소작은교단의 총회장을 비롯한 중견목사들이 가담해 목사와 교인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교인과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사기행각이라 낳은 편에 속한다. 강단에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고 교인들을 향해 외친 목사의 사모 살인사건은, 목사가 이리의 탈을 쓴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는데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렇게 거룩한 말만 외치던 이 목사는 역시 자신의 윤리적인 타락현장이 드러나면서, 부인과 잦은 싸움 끝에 살인이라는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다. 그것도 함께 살을 맞대고 살던 부인을 살인해 시체를 유기했다.

이러한 끔직한 사건도 모자라 최근에는 인천에서 개척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가 자전거 30대와 안장 58개, 시가 3000만원어치를 훔쳐 창고에 쌓아 두었다가 들통 났다. 이 역시 주말에는 목사, 평일에는 절도범으로 변하는 양의 탈을 쓴 이리였다. 경찰은 목사인 줄 모르고, 조사했다. 그런데 압수수색을 하던 중 주변의 사람들이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목사라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는 정모 목사가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활동했다가 사기혐의로 구속됐다. 전남의 60-70명 모이는 중견교회의 담임목사인 정모 목사는 중국의 보이피싱 조직과 인출금액의 1%를 받기로 하고, 피해자 2명으로부터 8700만원을 뜯어내 81만원을 챙기고 나머지는 송금한 혐의다.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목사의 범죄는 여기에서 끝나지를 않고, 이번에는 가짜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 병의원 3곳을 운영하면서, 국가보조금 70억원을 부당하게 받아내고, 8억원을 개인이 착복한 전과 10범의 50대의 전모 목사가 붙잡혔다. 이 목사의 범죄는 많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다행히 직원의 신고로 모든 것이 밝혀졌다. 대구경찰청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전모 목사를 구속했다.     

이렇게 목사들의 범죄가 다양해지면서, 목사의 위상 또한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의 윤리적인 타락을 비롯하여 교단장 선거철에 금품살포, 하나님의 헌금 횡령, 교회건축 비리, 강단에서 돈을 외치는 사이비 행각, 범죄자의 돈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쓰는 범죄 등등으로 인해 목사의 정체성이 크게 손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일어나는 범죄행위는 한국교회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목사들이 돈에 길들여지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목사의 탐욕은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교인들이 청빈했던 과거의 목회자를 그리워하는 이유이다.

이제 한국교회 목사들의 범죄는 종로 5가를 넘어 전국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이것은 분명 한국교회의 각 교단이 무자격목사를 양산한 결과라는데 이의가 없다. 누가 목사들의 범죄행위를 보면서, 언론보도를 대하면서, 교회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대부분의 목사들은 목사의 범죄행위에 대한 심각성을 모르고, ‘목사도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거야’ 등의 말로 아무렇지 않게 그냥 넘겨버리는 세태는 더 이상 한국교회에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