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 전 덕 기
먼저 교계 신문의 범람 속에서 지령 100호를 맞은 기독교한국신문 발행인과 임직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척박한 교계의 언론 현실 속에서 불철주야 문서선교를 통한 복음전파의 사명을 부여잡고 올곧게 한 길을 걸어온 데 대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다.

그러나 신문이란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는 의무뿐만 아니라 현실을 계도해 가야 할 의무가 있는 사명까지 있지 않느냐고 할 때,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기독교계 신문들이 너무 너무 많다.

한집에 적어도 10여종 넘는 신문이 들어오는데 모든 기독교계 행사들을 알리는데 급급하고, 그 내용기록들이 천편일률적으로 거의 같다. 한사람이 써서 나누어 준 것처럼, 그리고 종파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인데 그 종파별 신문을 갖고 있는 것 또한 문제이다.

온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한분이신데 각기 주장만큼 종파를 많이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민족일 것이다. 제 잘 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기독교계 신문들의 발행 수도 많다.

이러한 교계 신문의 홍수 속에서 기독교한국신문은 한국교회의 개혁과 변화를 표방하면서 차별성과 경쟁력 있는 기사를 작성하고, 이를 통해 한국교회의 부조리를 척결하는데 일조하는 신문이 되었으면 한다.
단순히 행사 위주의 기사를 다루기보다 사회적인 비판에 직면한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을 찾아내고 이에 대한 대안까지 모색하는 신문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이름도 빛도 없이 복음전파의 사명을 붙잡고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을 발굴해 지면에 소개했으면 한다.

기독교한국신문의 사시는 ‘생명’ ‘정의’ ‘평화’ ‘사랑’이라고 들었다. 모든 임직원과 기자들이 이러한 사시에 합당한 신문사가 될 수 있도록 애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생명’을 ‘사랑’하는 가슴으로 발행했는가? 주님의 공의로움과 인자하심으로 ‘정의’를 실천했는가? 주님의 진실하심과 영원하심으로 ‘평화’를 ‘사랑’했는가? 책망과 비방보다 계도적이었어야 하는 신문으로 노력했는가?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문이고자 노력했는가? 등을 스스로에게 묻고 이러한 신문이 되도록 노력해 주길 바란다.

세상에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마땅히 예수님의 십자가사랑과 희생이 널리 전파되고 사회정의가 구현되는 평화로운 사회로 나아가게 함에도 왜 사회는 더 혼란하고 부정부패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가. 왜 인간존엄은 사라지고 황금만능주의가 되어 가는가. 서로 물고 늘어지는 3류 정치인들의 패거리 싸움들은 언제나 끝이 날 것인가.

이토록 사회가 부정부패하고 혼란한 것은 상당 부분 이 땅의 기독교인들의 책임이다.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으로 이 사회를 선도하고 있지 못하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도 세상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가 변화되어 다시 한 번 세상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사회에 유익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나라의 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리사욕에 눈이 먼 정객들을 우리 기독교 언론계가 순화시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한국신문이 이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한국교회의 변화와 개혁에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한민족평화통일촉진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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