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크게 성장했다. 또 그 만큼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많은 것도 잃었다. 한국교회가 첫사랑, 아니 목회자들의 처녀목회당시의 초심을 잃으면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그것은 모두 돈과 관련되어 있으며, 교회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그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닌, 돈이 많아서가 문제이다.

사실 한국기독교는 부자들의 종교로 변질되면서,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기 시작했고, 교회당의 십자가 높이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아지고 있다. 그것도 경쟁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등지고, 가난한 교인들이 부자들에게 밀려 교회를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맘몬교회당이 경쟁적으로 건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한국교회가 경쟁적으로 교회당을 건축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70-80년대 십자가만 세우면, 교인들이 몰려왔다는 잘못된 생각이 지금도 목회자들의 머릿속에 꽉 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이웃을 외면하면서, 교회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며, 가난한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대형교회들이 떠난 교인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작은교회의 교인들을 빼앗는 교인쟁탈전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건축비가 어느 정도만 마련되면, 교인들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교회당 건축을 무조건 밀어붙이는 풍토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모자라는 건축비는 제1.2금융권에서 비싼 이자를 주고서라도 돈을 빌려 충당했다. 그것도 모자라면 사채까지 동원했다. 이렇게 제1.2금융권에서 빌려 쓴 돈은 무려 40조에 이르며, 한국교회는 매년 4조에 이르는 이자를 내고 있다. 여기에다 사채시장에서 빌려 쓴 이자까지 포함하면 가히 천문학적인 숫자이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 듯 미래학자 최윤식박사는 머지않아 한국교회가 경제적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것은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일부교회가 이단종파에 넘어가고, 마이너스 경제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분석해 발표한 것이라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실 한국교회는 교회당을 건축하면서, 교인들의 경제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목회자 한명의 욕심과 탐욕에 의해서 건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 건축비 50%가 확보되면 아니 그보다도 크게 미치지 못해도 교회당을 무조건 건축하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나머지 50%의 건축비를 어떻게 조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이미 교인들이 자신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건축비를 내놓았기 때문에, 나머지 건축비를 마련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결국 제1.2금융권과 사채시장에 손을 내밀어 교회당 건축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빚에 허덕인다. 여기에다 건축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고, 얼마 남지 않은 교회건축비를 갚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마치 빚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듯한 형색이다.

지금도 경제적인 압박에 못 이겨 많은 교회들이 이단 및 사이비 단체에 팔려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많은 교회가 제1.2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교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건축된 교회당이 무리한 건축으로 인해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들이 들어나고 있음에도 한국교회의 무리한 교회당 건축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박사의 한국교회를 향한 지적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박사는 “지금까지 한국교회에 나타난 위기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온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부터의 위기는 내부적인 것이고, 성장의 과정에서 오는 것이 아닌 쇠퇴를 불러올 수 있는 위기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골은 깊어질 것이고 한국교회의 침몰을 가속화시킬지 모른다. 단순히 참고 버텨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최박사의 지적은 한마디로 제1세계 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말라는 말로 해석된다. 한국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목회자는 목회의 초심을 잃지 말고, 교인들은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