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호 관 목사
요즈음 교회 안으로 가만히 들어와서 어느새 상당한 자리를 확보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맨토>라는 존재 때문에 매우 혼란스럽다. 교회에서 <멘토>라는 말을 주저하지 않고 쉽게 사용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맨토>라는 말의 역사적 유래를 생각해 보고, 이 말을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깊이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멘토(Mentor)의 사전적 설명은‘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 스승, 은사, 좋은 지도자’이다. 그리고 경영학 쪽에서는 경험이나 지식이 풍부한 사원이 각자에게 맡겨진 신입사원을 지도해 주는 조직체계를 <멘토링Mentoring>이라 하여 조직 내에서 상급자(mentor)와 하급자(protege 또는 protegee)간의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관계발전을 조정하거나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유익하게 사용되고 있다. 멘토링은 철저하게 상·하급자간의 관계에서 진행되는 경력개발프로그램인 셈이다. 이것 역시 멘토에서 파생된 개념을 발전 적용한 프로그램이다

. <맨토>는 본래 그리스신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옛날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연합국에 소속돼있던 '이타카' 왕국의 오디세우스 왕이 전장에 나가면서 자신의 어린 왕자를 <멘토>라는 친구에게 맡겼다. 전장에 나간 왕의 아들을 맡은 친구 <멘토>는 그 왕자를 자신의 친아들처럼 정성을 다해 키웠다. 때로는 엄한 아버지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조언자로서, 또한 자상한 선생이 되어 어린 왕자가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다 했다. 10년 세월이 지나 트로이 전쟁은 끝이 나고 오디세우스 왕은 이타카 왕국으로 돌아 왔다. 전장에서 돌아 온 부왕을 환영하는 왕자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게 성장해 있었다. 오디세우스 왕은 왕자를 그렇게 훌륭하게 길러낸 고마운 친구 멘토의 이름을 불러 칭찬하기를 "역시 자네다워! 역시 '멘토(Mentor)다워!'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백성들 사이에서 훌륭하게 제자를 교육시킨 사람에게 '멘토'라는 칭호를 부여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예수님을 제자들의 멘토라 한다거나 사도바울은 디모데의 멘토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그리고 목사와 성도의 관계를 굳이 멘토와 멘티로 설정함이 합당한가?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좀 더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런 제안이 생뚱맞다고 생각하는 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정치판에 엄청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면서 유명을 달리한 경남기업 전 회장의 멘토가 진경스님이었다는 뉴스를 듣고 나서 스스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어디서 누구로부터 이런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는지 그 근원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장로의 멘토가 스님이라!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진경스님께서“내가 그의 멘토”라고 자임했는지 여부를 확인한바 없고, 또한 고인이‘나는 진경스님의 멘티였다.’한 말을 듣지 못했으니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렇게 확정하는 것 자체를 쉽게 용납하고 쉽지가 않다. 그러나 생사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10여 일간, 그야말로 삶의 골든타임에 장로의 신분(명예장로라지만)으로서 그가 찾아 만나야 할 분은 예수님이어야 하고, 그 다음 당연히 목사를 만났어야 하는 게 아닌가?

목사로서 깊은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사람을 위해서 고명하신 스님, 그것도 멘토로서 한일이 점집으로 인도하여 사주팔자를 보게 하고 복채를 대납해 주는 일이었다니 이 또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고민에 빠진 크리스천이 왜 없겠는가? 그가 장로가 아닌 일반 교인이라고 해도 지금 내가 누구를 만나야 할까? 망설이다가 스님을 찾고 점집을 찾아가고 있다면 이 시대의 목사인 나는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인가? 대답할 말이 궁색하여 안타까울 뿐이다. 교회 안에서 멘토링은 가능한가? 그리고 목사는 교인들의 멘토인가? 하는 질문에‘아니요.’라고 대답한다. 목사와 교인의 관계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는 어떤 경우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 멘토라는 말은 없다. 제자가 있고, 종이 있을 뿐이다. 좀 더 양보하면 청지기가 있다. 이런 말(직분)들은 멘토보다 훨씬 좋고, 아주 적절한 말이다. 모름지기“교인들은 목사의 멘티가 되어야 하고, 목사는 교인들의 멘토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야 세련된 목사라는 최면에 걸린 것은 아닐까? 교회에서 목사는 교사요, 섬기는 종이며,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이다. 얼마나 귀한 이름이고 직분들인가?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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