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진심어린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아십니까? 혹시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상한 감정을 아이들에게 폭발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적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아이들에게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 꼭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화낸 이유를 설명해 주고, 반드시 미안하다고 용서를 비세요, 그리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당신이 알고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격한 감정을 잘 마무리 하도록 노력해보세요. 그리고 웃어 보세요!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스트레스 쌓이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지요? 그런 경우가 생길 때, 가끔 웃음 그 자체가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반법이 됩니다. 아이들 자체가 정말 재미있고 웃긴다는 사실을 일부러라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화를 내기보다는 웃음으로 그 상황을 모면해보세요, 웃으면서 긴장도 풀어 보시구요, 자구 웃는 습관도 들이세요, 대신 비웃거나 비아냥거리거나 한심한 듯이 웃는 그런 웃음 말고, 정말 건강하고 환하고 순수한 그런 유쾌한 웃음을 지어 보세요. 이렇게 웃는 연습을 계속 하시면서 아이들에게도 웃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아이들과 함께 웃으시라는 말입니다. 함께 웃기는 이야기해주고, 함께 막 웃을 수 있는 황당한 상황도 만들어 보세요.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매일 힘든 삶 속에서 그것이 힘들다고 생각지 마시고 그 힘든 것 뒤에 또 재미있고 흥미 있는 일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많이 웃으시라는 이야기입니다.(출처 : 우리엄마 폭발할거야)

우리에게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서 일까? “한국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미소를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까지 하기도 한다. 물론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라는 이들도 있다. 이는 우리의 정치 현실이 웃음을 주지 못하는데서,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깊어지는 요인이기도 하다. 우리의 정치상황은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이이다 보니, 농담이나 해학도 없이 무슨 약점이 없나 부릅뜬 눈에서 불만 뿜어대니 함께 웃으며 하는 정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각 표정들에서 위협감만 까지 느끼게 한다. 그러다보니 가족들 간에도 웃음은 사라지고 냉전의 기류만 흐를 뿐이다. 부부간에도 시선은 TV에 고정시키고 씩씩댈 뿐, 서로 마주보며 씽긋하고 웃는 모습은 아예 기대 할 수 없으며, 부모 자식 간에도 고성의 꾸중만 오고 갈 뿐 웃으며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을 아예 기대할 수 없으며, 아이들은 “계모 같아, 계부 같아” 하며 볼멘소리로 가득하지나 않은지?

하루는 예배를 마치고 내려오니, 딸아이 왈 “아빠는 설교하면서도 왜 인상을 구겨?” 하고 묻는 말에 “아닌데!”하고 대답은 했지만 적이 당황하였다. 필자는 평소에도 미소가 없는 편이기에 더욱 당황했는가 보다. 설교자가 설교에서 개인감정이 표출되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그 날 만은 우리 정치 현실에 속이 상했던 일과 무관치 않았다. 목사가 정치에 속상할 일이 무에 있냐고 하겠지만 정치 역시 우리의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 주의 하마”라고 말은 했지만 내심 속이 편치는 않았다. 누구나 칭찬 보다 꾸중의 말은 가히 반기지 않기 때문일까? 그러나 딸아이는 아빠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음에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따라서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족은 물론 길에서 지나치는 이들에게 까지 미소 띈 표정을 보이리라 다짐도 해 본다. 웃으면서 생활하고, 웃으면서 잠들고, 웃으면서 잠들게 하기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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