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요즘 날씨는 화사한데, 사람 사는 세상은 밝지가 못하다. 불법비자금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사람이 억울하다며 자살하면서 남긴 메모지에 적힌 이들의 처신이 볼만하다. 하나같이 부패척결을 외치던 살아 있는 권력이어서 그런지 어떻게든 국면을 전환하려는 몸부림은 보기에도 딱하다. 이럴 때 정호승의 시 ‘부러짐에 대하여’ 한 토막으로 우리 현실을 반추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나뭇가지가 바람에 뚝뚝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는 새들을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로 살아남는다면
새들이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
만일 나뭇가지가 작고 가늘게 부러지지 않고
마냥 크고 굵게만 부러진다면
어찌 어린 새들이 부리로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하늘 높이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인간의 집을 짓는 데 쓸 수 있겠는가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인식이 팽배한 세상에서 부러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들에게 정직 ․ 양심 ․ 법치 따위의 말들은 이미 가진 자들이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위선일 뿐 현실은 냉엄하다. ‘그러면 그렇지!’ 라며 아니꼬운 시선이 뒤통수에 꽂힐지라도 결코 부러져서는 안 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 시대를 풍미하는 승자들을 보라. 돈, 권력, 명성이 절로 굴러 들어오더냐.

하지만 달은 차면 기울고, 물도 차면 넘치는 법. 조물주께서 변치 않을 것 같은 세상 일에 시한과 경계를 두셨다는 게 오묘하다. 아무리 부러지지 않고 더 버티고 싶어도 수액이 빠져나간 나뭇가지는 옛 모습이 아니다. ‘부러짐’이 무엇이겠는가? 겸손함이다. 허물을 실토합니다. 부러져야 세상에 녹아 들어간다. 잠언의 말씀이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삼일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