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부모 되기는 쉽지만 부모 노릇 하기는 쉽지 않다”는 옛말이 있다. 당연한 말이다. 자녀를 둔 부모가 “어떻게 하여야 자녀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의 질문은 자녀를 둔 부모들의 영원한 과제일 것이다.

명절이거나 어버이 날 등에는 어머니 생각이 심난할 지경으로 깊다.

유독이 많은 자녀들을 키우신 우리 어머니께서 어떤 일로 마음이 상하실 때면 이르시던 말씀이 있다. “너희들도 나중에 자식 낳아 길러 봐라. 그때는 이 에미 맘을 알거다.”

나도 나이 들고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어머니의 말씀이 품은 뜻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 노릇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님도 실감하고 있다.

두 아들 중에 큰 아들은 목사님이시라 목회의 고단함과 목사로서 가는 길과 가야할 길을 서로 공유하면서 나름 성숙한(?) 교제를 나누는 편이다. 손주도 안겨주고, 딸 없는 집에 며느리는 이쁘고, 귀하기만 하다. 아들이 아들을 낳은 후에 자기 카카오톡 프로필에 ‘너로 인해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졌단다.’라는 글을 남겼다. 아들을 얻고, 오는 변화와 충격을 짐작하게 한다.

자식 사랑은 저절로 우러나지만 부모를 아는 일에는 목사님이라도, 한 아이의 아비라도 아직은 미숙이다. 하지만 자기 속으로 낳은 아기를 어르고, 살피고,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것을 보고, 주님께 감사드린다.

결혼을 독촉하는 부모와 아직 계획이 없다고 맞서는 둘째는 요즘 젊은이들이 대개가 그렇다지만 늦게 들어오고, 늦은 밤까지 컴퓨터와 핸드폰 친구들과 노닥(?)거리다가 잠자리에 들고는 아침도 거른 채 들깬 듯한 모습으로 회사에 출근하고, 하루라도 쉬는 날이면 오전 내내 자는 모습을 보곤 한다. 시간을 절도(節度) 없고, 무질서하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꾸지람 겸 충고를 하지만 농도 타지 않는다.

때로는 아예 대놓고 아버지 말이 잔소리라고 핀잔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인기가 없다고 나름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그저 제시간에 직장 출근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아버지 노릇하기가 벅찬 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고,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아버지들의 공통의 고민이 아닐까 싶다.

그 누가 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가진 이가 있을까싶지만 그래도 우리는 부모의 교과서인 성경말씀을 가졌고, 그 중에서도 잠언의 말씀을 가졌기에 그 교훈 속에서 길을 찾고, 방향을 익히며,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따라 주님 탄생하신 베들레헴까지 무사히 이르렀던 것처럼 자식노릇, 부모노릇을 잘 감당할 것이라고 믿으며 용기를 가진다.

부모(父母, parents)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름이고, 어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성경에서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할 책임을 맡은 자(신 6:7,20)요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할 수 있는 영적권위를 부여받은 자로 자리매김을 한다(창 18:18-19). 따라서 부모의 제일 되는 책임은 자녀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고(창 22:1-19; 왕상 22:43; 왕하 15:3),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이다(출 10:2; 신 6:6-7; 엡 6:4). 그리고 자녀를 보호하고(히 11:23), 자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삼상 1:27; 욥 1:5), 그릇된 길을 교정해 주고(신 21:18-21), 징계를 주저하지 말라(잠 3:12; 19:18; 딤전 3:4-5; 히 12:7)고 하신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는 십계명 중 제5계명 즉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다(출 20:12; 엡 6:1-3).

특히 잠 23:22-35에는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할지와 그 방법까지 소상하게 교훈하신다.

아비의 말씀에 청종(듣고 받들어 순종)할 것, 어미를 경히(가볍게) 여기지 말 것, 부모를 즐겁고 기쁘게 할 것, 음녀나 이방여인을 좇지 말 것, 술을 찾거나 즐기지 말며, 취하지 말라는 것 등이다. 동시에 성경은 이렇게 하는 자가 이 땅에서 누릴 복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그것은 장수(長壽)의 복이다(출 20:12). 반면, 불효자에게는 사형의 가혹한 형벌을 규정하기도 하셨다(출 21:15; 레 20:9; 신 27:16).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는 데는 ‘주 안에서’라고 단서를 다신다(엡 6:1). 이는 곧 부모가 원하는 것이라도 주님이 원치 않는 것이라면 순종해서는 안된다는 단서의 의미다. 이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역시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하라는 단서가 있음도 명심해야 할 일이다.(골 3:20).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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