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이 하룻밤 욕정으로 인해 온 몸이 묶인 상태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끌려나오는 신세가 되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은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삿 16:23-25)라고 환호작약한다. 이스라엘로서는 그보다 더한 치욕도 없을 터이지만, 중요한 것은 블레셋이 섬기는 다곤 신과 이스라엘 공동체가 섬기는 야훼 하나님과의 대결에서 지금 이스라엘의 신이 블레셋의 신에게 포박되어서 머리칼이 잘리고, 눈이 뽑히고, 맷돌을 가는 신세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야훼 하나님이 다곤 신의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신전 기둥에 묶여 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럼 야훼께서 패하신 것인가? 아니다. 설화자는 야훼 하나님의 최후 승리를 이렇게 전한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삼손이 지닌 괴력은 그의 머리카락에 있었던 게 아니다. 삼손의 머리카락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릴와의 관계로 대치했을 때 괴력도 사라졌다. 삼손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른 무엇과 대치하는 순간 세상을 희망으로 사는 능력은 사라진다. 그 빈자리에 무기력과 좌절과 무의미, 원망과 분노가 달라붙는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어떤가?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미 돈으로 대체되어 있으면서, 허울뿐인 머리카락만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게 아닌지.
삼일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