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문학 이론 가운데 ‘외적 기호’ ‘내적 기호’라는 말이 있다. 외적 기호란 내적 기호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적인 개념이다. 가령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외적 기호라면 달은 내적 기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적 기호인 달에는 관심이 없고, 외적 기호인 손가락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내용은 없고 겉만 꾸미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 가지를 금하신 바가 있다. 랍비 행세를 하지 말라. 율법의 아버지 행세를 하지 말라. 지도자 행세를 하지 말라. 이 세 가지는 유대 남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최고의 영예이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진정한 랍비가 되고, 진정한 율법의 아버지가 되고, 진정한 지도자가 되려고 절치부심은 하지 않고 흉내만 냈다. 외적 기호에만 집착하는 허위와 위선이 극에 달했던 것이다. 이런 위선을 부정하신 분이 예수이시다. 그것을 ‘아니다’라고 몸으로 보여주신 것이 십자가이다. 평소 예수를 열광적으로 따른 무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갖가지 외적 기호 즉 기적들, 권위 있는 가르침 등을 보고 따랐다. 예수께서는 그런 이들을 향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고 하신 것이다.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외적 기호가 아니라 내적 기호라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이들을 향하여 오히려 “나의 약함을 자랑한다”(고후 11:30)고 했다.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전 9:12). 인간은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지혜를 자랑하고, 지식을 자랑하지만 정작 때를 주관하시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조물주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늘 아래서 산다. 허물 많은 존재이다. 그럼에도 마치 제가 하는 일이 하늘의 일인 것처럼 자기를 부풀린다. 어리석음, 무지, 교만, 자기기만 때문일 것이다. 선을 행할지라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정말 자랑할 게 있다면 자신의 약함과 무지와 허물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어려운 때일수록 특히 나라의 지도자들은 ‘감히 네가 뭔데’ 라고 날 세우지 말고, 누구든지 협력해야 한다. 요즘처럼 가뭄이 계속되고, 전염병(메르스)의 끝이 보이지 않는 때이고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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