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먼저 약식세례(洗禮)가 성경에 계시되었는가? 아니면 침례(浸禮)가 성경에 계시되었는가? 만약 두 가지가 다 기록되었다면 이는 진리가 아니다. 세례와 침례 이두가지 중 성경에 기록된 것이 어느 것이냐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면 예수님이 침례 요한에게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신 다음 물에서 올라 오셨다고 하셨으니 침례가 성경 기록과 번역으로 옳은 대답이다. 그리고 왜 이 세상에 기독교의 중요 의식가운데 신앙의 첫 출발을 하는 의식이 세례라는 말로 번역되어 말세에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언제나 진리는 하나이다. 만약 진리가 두 개라면 기독교의 예수님도 자신을 가리켜 “ 내가 곧 길이요 질이요 생명이니,” 라는 말씀도 수정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또 다른 진리가 존재하기에 인간들은 여러 가지의 진리 중에 자신의 취향 맞는 진리 하나만 선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4장5절에 의하면 “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 라고 기록했다. 여기에 세례라는 단어의 해석은 원어 뱁티스마(동사 뱁티죠)를 한국 실정에 맞게 당시번역 위원들이 신앙의 토착화를 위해 기독교가 전파되던 한국의 실정에 맞는 여러 가지 해석 가운데 하나인 씻는 예식으로 번역 했다고 한다. 이는 구한말 시대 풍조에 침례의식을 실행한다면 사회와 괴리된 신앙으로 받아드려 이 땅에 발조차 붙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씻는 예식은 당시 한국 사회에 만연한 민간 신앙의 일종으로 가족의 건강과 무사안일, 나라의 태평성대 그리고 출타한 자식의 무사 귀가를 위해 새벽미명 정화수 한 그릇을 떠 놓고 목욕재계 하는 풍습이 곧 기독교 세례의식이 정착된 경우라고 성경번역 위원들이 번역에 대한 해명이다.

1517년 말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종교개혁은 당시 유일한 교회로 자처하던 천주교회가 막강한 교황의 권력으로 교회를 장악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 교회를 잘못 운영하고 있음에 대한 항거다. 여러 가지 중 95개 조항을 브탠베르그 성당 문에 게시함으로 종교 개혁의 포문을 열었다. 천주교로부터 혁명하여 새롭게 시작한 개신교회는 천주교가 성경을 이탈한 조목조목을 비판한 후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에 계시된 교회의 면모를 갖추고자 했다.

기독교 예전의식 중 세례의식은 기독교인의 중요한 성례 중 하나이다. 그런데 근간에 기독교 연합 단체 활동하는 목회자 한 분이 세례가 아닌 침례 즉 세례 받은 신도가 이해관계나 신앙의 정립을 위해 다시 침례만 인정하는 교회로 유입 할 시 침례를 받아야 하는 일에 대해 “재 세례” 라고 언급하며, 88년간 이 땅에 성경에 계시된 교회를 선교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자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것도 한국기독교 총 연합회의 간부로 있는 목회자가 공공연하게 언급한 처사는 지도자급에 있는 목회자의 입에서 나온 믿기 어려운 말이다. 진작 자신이 받은 세례 의식이 성경적이며, 원문을 토착화를 위해 재해석 한 것이 하나뿐인 진리인지 묻고 싶다. 진리는 많은 사람이 받아드린다고 해서 진리가 아니다. 구약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과 율법을 좇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지만, 당시 예수님은 혼자라 할지라도 본인을 진리라 하셨음을 믿어야 함이 진리의 정당성이다.

성경에 기록된 인간의 죄를 용서 받고 영혼이 구원을 얻는 영적인 방법은 바로 성경에 계시된 방법을 따르는 길이 유일하다. 그것도 사람들이 해석으로 내 놓은 번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어가 주는 본래의 의미를 그 나라의 문화와 풍습과 예법이 있을지라도 성경의 의미를 벗어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즉 사람의 방법과 타협치 말아야 함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세례라는 단어는 원문 성경에 없음을 알자.

성경에 계시된 세례의식은 뱁티스마(뱁티죠) 하나다. 이는 예수님을 믿기 전의 모든 불신의 죄를 물속에 장례를 치르는 영적인 장례식이다. 현재 교회가 사용하는 세례라는 단어는 종교개혁 이후 해석해 만들어낸 단어에 불과하다. 성경에 계시된 침례의식을 받지 않았다면 죄 용서의 세례를 받지 않음(?)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성경적인 세례를 받지 않은 자가 교단모임의 간부라는 권세로 작은 교단에서 성경적으로 실행하는 침례를 재 세례라고 운운하며 이단으로 정죄하자는 망발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 그 목회자의 거듭남과 신앙이 의심스럽다.

한국교회가 이처럼 추풍낙엽처럼 교인들이 줄어드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력이 없는 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 상식이 진리가 아님을 알지 못한 우물 안의 개구리 신앙 때문이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이여 남의 신앙을 존경하고 입을 조심 또 조심하자.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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