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총과 한교연의 통합이 꼬이고 있다. 금권선거와 이단문제로 4년 전 따로 나온 한교연은 한기총의 변화없이는 하나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다가 양병희 목사가 대표회장에 취임한 후 이단문제만 해결하되면 통합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다소 유연한 태도로 바뀌었다. 한기총 이영훈 대표회장도 이단문제를 잘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드러내 이번에는 뭔가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부푼 기대는 지난 9일 한기총 실행위가 끝난 후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그날 아침에 열린 한기총 임원회에서 이단검증특별위원회가 류광수 목사의 다락방에 대해 이단이 아니라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임원회가 이것을 그대로 받으면서 파란은 시작되었다. 뒤이어 비공개로 진행된 실행위에서도 이 보고서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이날 류광수 목사에 대한 ‘이단 해제’ 결의를 존중하겠다는 이단검증특위의 보고는 “류광수 목사는 이단이 아니다”라는 한기총의 종전 입장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했다.

회의 직후 한기총 측은 실행위에서 채택된 이단검증특위의 보고서가 각 교단이 파송한 전문위원들의 보고서를 그대로 수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예장 통합, 백석, 기성, 기침, 기감, 기하성, 그리스도교, 한국조직신학회 등 8개 교단 단체에서 파송된 전문위원들은 자기들이 제출한 보고서와 완전히 다른 내용이 채택됐다며 펄쩍뛰고 있다. 전문위원들은 이영훈 대표회장이 전문위원을 위촉하는 자리에서 “전문위원들에게 전권을 주겠다”고 약속해 그대로 믿었고, 자신들의 결의를 100% 존중하기로 해놓고 정작 엉뚱한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자기들이 마치 이단을 인정한 것처럼 만들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영훈 목사의 약속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한교연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드러냈다. 한교연은 지난 10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단을 옹호하고 감싸는 기관과는 함께 갈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성명서 내용 어디에도 한기총이나 다락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누가 봐도 한기총을 겨냥한 분명한 선긋기였다.

한교연 양병희 대표회장은 그동안 내부의 부정적인 기류에도 불구하고 한기총 이영훈 대표회장과 양 기관 통합에 대해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동성애, 봉은사역명 문제 등 대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두 사람이 뜻을 같이하고 공동기자회견 자리를 만들어 자주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면서 양 기관의 통합은 가시권에 들어오는 듯 했다. 그러나 이번 일로 양 목사의 행보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결국 ‘혹시나’는 ‘역시나’로 바뀌었다. 교계에서는 ‘혹시’ 하는 일말의 기대감마저도 지나친 욕심이 아니었겠느냐며 자조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렇게 쉽게 바뀔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위원을 파송한 교단들은 이영훈 목사의 말을 믿었는데 결국 또 다시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며 이 목사가 처음부터 의지가 있었는지 조차 의심스러워하고 있다.

한기총이 끝내 이단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결국 한국교회 보수권의 하나되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당사자인 한교연이 이 문제를 맹공격하고 나섬으로써 그동안 쌓아온 양 기관 대표회장 간의 우정에도 금이 가게 됐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이단이라는 신학적으로 예민한 사안을 교단이 아닌 연합기관이 정치적으로 풀려는 욕심을 드러내는 순간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었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