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이런 기적은 훗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는 기적에 대한 예표적인 드라마의 한 부분이다. 하나님은 어떤 불가능 한 상황에서라도 원하시는 바를 만들어 내시는 창조주이시다. 마리아를 통해서 남자 없이 태어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사건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낳은 기적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보여주시는 예표적인 교훈들이다. 이들 일련의 성도들, 사라, 엘리사벳, 마리아 등이 여성으로서 겪은 사건들은 불가능한 성취를 통해서 위로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해서 경외함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 다시 세월이 지나서 어머니 사라가 127세에 사망하였다. 어머니의 남다른 사랑을 독차지 했던 외아들 이삭은 큰 슬픔 속에 지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어머니와의 이별은 회복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마침내, 나이가 많은 아브라함은 아들을 위해서 결단을 내렸고, 고향에서 며느리를 데려오게 하였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를 얻은 후에야 하나님의 위로를 맛보았다.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한 후에야, 이삭의 공허한 마음이 채워졌다.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창 24:67). 아내는 사랑하던 어머니를 여읜 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이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에게 잘못한 죄로 인해서 평생을 두려움으로 살다가, 동생이 용서를 해 주며 위로하자 하나님의 구원으로 맛보게 되었다. 아버지 야곱에게 형들의 잘못을 고해바치던 열 한 번 째 아들 요셉을 미워하여, 그만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고,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겼다. 그러나 17세 청년 요셉은 참고 인내하면서 성실하게 노예로서 주인을 섬겼다. 다시 건장한 청년의 외모를 흠모한 주인마님의 미혹을 뿌리친 대가로 감옥에 던져지는 혹독한 고난을 당했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요셉은 성실하게 하루하루 열심히 충성하면서 살았다. 누구를 원망하기 보다는 앞날의 꿈을 기대하면서 이겨냈다.

서른 나이, 애굽왕 바로의 꿈을 해석한 후에 지독한 감옥의 고통에서 벗어난 요셉은 마침내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7년의 풍년과 지독한 7년의 흉년을 잘 관리하며 감독하였다.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와 형들과 동생을 만나게 된 요셉은 형제들과 여러 차례 눈물을 훔치면서 그동안의 설움을 달랬다.

아버지 야곱이 애굽에 내려온 지 17년 만에 147세에 열두 아들에 대한 예언적 축복을 선포하고 사망했다. 이제 아버지가 없는 세상에 남게 되자 형들은 공포심에 휩싸였다. 혹시 동생 요셉이 지난 날 자신들의 악행에 대해 보복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 하소서” (창 50:17).

요셉의 형들은 지독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끔찍하게 보기 싫어하던 동생에게 비정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형들은 이제 죄 값을 갚아야 할 때가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허망한 생각을 하면서 죄를 짓는다. 그러다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 값을 치르게 하실 때에야 뒤늦은 후회를 한다. 예수님에게 악행을 가하고도 회개하지 않았던 가롯 유다, 빌라도, 헤롯, 대제사장들, 유대주의자들도 로마의 권력을 편들면서 무고한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았다. 그 피 값을 어찌 갚아야 할지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 50:19-21)

요셉은 눈물을 흘리면서 두려움과 공포심에 떨고 있는 형들을 위로하였다.

악이 범람하는 세상, 불행한 관계에 연루될 때가 많다. 심지어 가족 간에도 비극적인 원한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피차 경쟁관계에서는 서로 비정한 행동을 할 때도 많다. 인간관계는 권력 지향적이기에 서로 격돌하고 경쟁한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지진, 풍랑, 전쟁, 대립, 갈등의 격랑 속에서 불행한 사건들에 연루되어 살아가고 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