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은 각 사람의 깨달음에서가 아닌 기억에 의해 전승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뜻에서 기독교를 가리켜 ‘기억의 종교’ 또는 ‘역사적 종교’라고 말하기도 한다. 출애굽기는 유월절에 대해 기술하면서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라고 시작한다. 이렇게 유월절을 한 해의 출발점으로 삼아 죄악의 역사, 아픔의 역사 가운데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새로운 인생,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려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를 통해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자각하였다. 때문에 유월절 축제는 먹고 마시는 축제가 아닌, 자기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 벌이는 ‘기억의 축제’인 것이다.
김영삼 정부 때 옛 총독부 건물을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며 철거해버린 일이 있다. 객관적 자료는 없지만, 당시 가장 기뻐했던 이들은 일본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총독부 건물을 볼 때마다 가슴을 쓸어 내렸는데, 그런 물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말 절개 있고, 뜻을 지닌 민족이라면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기억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 역사는 창조하는 것이 아닌 기억을 통해 축적하는 것이다. 금년은 해방 70주년임과 동시에 분단 70주년이기도 하지 않은가. 유난히 폭염이 계속되는 이 여름, 저마다 즐기는 바캉스가 잊기 위한 축제만이 아닌 기억하기 위한 축제도 되었으면 한다.
삼일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