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한국교회가 양계장이 되어가고 있다고. 교인을 계란 낳는 닭으로 여기는 양계장 같은 교회가 늘어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교인을 가축처럼 사육하여 어떻게 잡아먹을까 골몰하는 가축우리 같은 교회를 떠나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한국교회를 향한 그의 돌직구 발언에 담긴 숨은 뜻은 무엇일까.

양계장 같은 교회, 가축우리에 교인을 가두고 사육하는 교회를 떠나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인이 떠나야 할 교회의 특징을 열거했다. 인간이 주도권을 잡고 주인 노릇을 하는 교회, 교인을 계란을 낳는 닭으로 여기는 양계장 같은 교회, 가축처럼 사육하여 어떻게 잡아먹을까 심사숙고하는 가축우리 같은 교회, 진리보다 관습과 전통을 애지중지하는 교회, 5호 담당제와 같은 조직을 통해 관리를 받는 교회로부터 떠나라고 외친다.

건축한다고 헌금을 강요하는 교회, 은행 빚을 갚는다고 본질적인 일을 도외시하고 부수적으로 여기는 교회, 세습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대로 호의호식하는 목회자, 성장을 외치며 축복을 받는다고 하면서도 사회적 불의와 약자들을 돌보지 않는 교회, 권세와 명예와 대중적 지지도를 쫓는 목회자. 그는 이들에게서 속히 탈출할 것을 권면한다.

그는 한국교회 병리현상의 하나인 수평이동에 대해 언급하며 엄밀히 말하면 수평 이동이 아닌 상향이동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교인들은 끊임없이 ‘더 좋고 더 낫고 편하고 큰 환경으로의 상향 이동’을 해왔고 대형교회들이 이를 부추겨 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좋고 더 낫고 편하다는 것은 듣기 좋은 설교와 안락하고 쾌적한 교회 환경, 최첨단 시설과 편리한 근접성과 주차 공간 등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수평 이동을 하지 말고 하향 이동을 하라고 역설한다. 중심이 아닌 변두리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대우를 해주지 않는 곳으로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장이 작은 교회를 위한 변명이나 불평이 아니며, 큰 교회를 대놓고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것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의 작은 교회론은 일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로 옮겨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지침이 될 수도 있다. 그의 교회론은 큰 교회는 무조건 나쁘고 작은 교회는 좋다는 식의 이분법은 아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자칫 단순논리로 받아들을 수 있는 위험 요소도 있다. 큰 교회에서 받은 상처를 안고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작은 교회에 가서 잘 정착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예 교회를 외면하는 가나안교인이 될 수도 있는 문제점이 없지 않다.

한국교회가 선교 130년 동안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것은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교인들의 내적인 신앙도 같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단일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사회적 책임의 영역까지 확대되고 전세계로 선교가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평가받을 일이다.

그러나 교회가 외형적으로 커진다고 해서 교회의 본질적인 존재 이유와 사명까지 동반 상승하기는 매우 어렵다. 대신 커진 외형을 유지하고 더 키우기 위한 욕구가 떠 빨리 자라게 된다. 그래서 부득불 버스를 돌리고, 직분 장사를 하고, 건축헌금을 강요하게 된다. 누구나 처음엔 작고 소박하게 시작하지만 크게 키우는데 매달려 일단 커지고 나면 다시는 처음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문제는 큰 교회, 작은 교회가 아니라 절제할 수 없는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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