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쉰 바람이 흰 길을 낸다

한(寒) 데 내쳐진 한 무리 노구(老軀)
앙상한 몸피가 구푸린 채 부싯돌처럼 맞대고 있다

마른 뼛가락 속으로 환청이 여음을 잇던 날
어느 봄 만개한 복사꽃 낯을 꺼내 시린 손을 감싸 본다

이 빠진 옥수수알길을 들락거리는 기억의 발음 기호,
간간이 실날같은 오늘이 열리면

‘나 집이 가 느이들 하고 살믄 안 되겨. 었.. 냐,,,’

푸석거리는 머리칼 올올이 찬바람에 흩어지는 저물녘
허공에서도 흰머리 뭉치가 휘나리친다

발목까지 감고 있던 까끌한 수의가 전신에 휘감겨
삼켜버린 말 마다마디 타는 소리마저 차단된 공간

개울가에 옹송거리며 서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

가족도 온기도 외면한 초점 잃은 눈들이
인정(人情)에서 유리된 이름들이 하얀 걸음을 내딛고 있다

▲ 정 재 영 장로

억새를 늙은 나이에 있는 사람에 비유한 작품이다. 처음 행부터 겨울 서정을 형상화하여 삶의 마지막 절기인 노정의 인간군상으로 치환해내고 있다.

창작론의 기법으로 보면 이미지의 동원이다. 첫 연의 부싯돌, 복사꽃 낯, 옥수수알길이 그걸 잘 말해주고 있다. 억새의 모습을 푸석거리는 머리칼이나 까끌한 수의를 입은 전신으로 그려내는 것은 메타포를 통한 감각화를 위한 변용이다. 또한 쉬클로브스키의 새롭게 만들기의 작업을 충실히 해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노인들이 경노당이나 양로원에서 단체적으로 사시는 것을 보고 착상한 작품이다. 한 데라는 장소가 나타내는 차가움과 부싯돌의 따듯함의 이질적인 온도의 요소를 융합하여 노구의 이미지를 선명한 그림으로 대비하여 보여 주려하고 있다. 부싯돌은 불을 만든 기구이지만 이제는 식어버린 인간의 구푸린 몸으로 동원된 상관물이다. 치아의 결손부위를 옥수수알이 빠진 모습으로 그려 낸 것도 마찬가지다. 상실된 자리와 같은 기억에 의해, 우둔한 발음의 기능을 가진 노쇠한 인간의 모습을 억새의 바람소리로 의인화 해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미적 수용체를 위한 작업인 것이다.

개울가의 억새가 곧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말은 대상을 자아로 동일시하여 보여주는 현대예술의 특징인 표현주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억새를 이동시켜 대상과 사물을 바꾸어 주는 이동인식이나 자아와 치환하는 인식의 표현에서 메타포(metaphor)의 기능을 잘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시가 가지는 통징을 통한 정화의 기능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일하며, 영원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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