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주관하는 ‘한국 기독교 선교 130주년’ <근대의 기억, 신앙의 기록 -예수교서회의 문서운동> 특별전이 30일까지 숭실내 내 한국기독교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근대의 기억, 신앙의 기록 -예수교서회의 문서운동> 특별전은 한국기독교 선교 130주년을 기념해, 복음으로 사회를 계몽하고 민족적 자각을 촉구했던 조선예수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의 문서출판활동의 면모를 살피는 데 도움을 준다.

이번 전시회에는 지난 1890년 문서선교를 목적으로 창립된 예수교서회가 발행한 기독교 문서를, 유형별로 분류해 총 21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예수교서회가 발행한 최초의 신앙서적 「성교촬리」(1894) 등을 통해, 기독교 문서의 사회 계몽적 역할과 근대 이행기 선교 역사에 대해 집중 조명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또한 관람객들은 이승만·이상재 등 종로감옥에 갇혀 있던 개화 지식인의 개종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옥중전도문고’를 통해, 기독교가 초기 개화 지식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예수교서회가 한국 근대화에 끼친 공헌 중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우리나라가 출판문화를 통한 지식의 전달 체계를 제대로 갖추도록 도운 일이다. 대한민국의 발전에 있어 기독교가 문서출판을 통해 어떤 공헌을 했는지 130년 전으로 돌아가 그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당시 예수교서회의 기독교 출판의 규모가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통계자료가 있다. 당시 서회의 출판물은 해를 거듭할수록 급속도로 증가해 전도지까지 포함해 1900년에 9만 743부, 1905년에 25만부, 1912년에 60만부를 넘어섰다. 이 수치는 당시 한국에서 출판된 문서의 절반을 훌쩍 상회하는 수준이었다니 기독교 출판의 비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예수교서회 발행물은 복음 전도에 큰 비중이 있었지만, 근대계몽적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한글 보급과 서양 사상의 적극적 유입, 새로운 세계관 형성, 현대문학 태동, 출판문화 발전 등에 기여한 공로가 바로 그것이다. 서회의 문서운동 가운데 빛나는 성과가 바로 옥중문서를 통해 전도계몽활동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당시 대부분의 정치범들이 수용된 종로감옥에서 ‘옥중전도문고’를 운영하고 수많은 개종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오늘의 한국교회의 선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회의 기독교문서 간행은 기독교 선교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 출판계를 선도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근대 계몽과 민족문화 창달 등의 성과를 낳았다. 서회의 문서운동은 종교문화적·사회계몽적인 영역에서 한국을 근대사회로 이끈 것으로 평가받아 마땅한, 위대한 여정이었다고 할 것이다.

최근 역사교과서 단일화 논란 와중에 기독교계에서는 한국사 교과서의 종교편향 문제를 시정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지난 8일 한국기독교역사교과서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는 “현행 역사교과서가 극심한 종교편향과 기독교에 대한 차별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는 한국의 역사교육이 기독교를 무시한 명백한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30년 전 한국기독교는 나라와 민족에 등불과도 같은 존재였다. 당시 기독교의 교세는 미미한 수준이었으나 사회를 영도하는 영향력은 일당백을 능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 전체 인구의 4분의1이 기독교인이라는 엄청난 교세 증가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힘을 못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130년 전 예수교서회가 주도했던 찬란한 기독교문화가 오늘날 교회 성장과 부흥의 뒤안길에서 오히려 역주행하고 있는 현실은 한국사 교과서의 기독교 홀대만큼이나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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