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몰각한 한국교회의 행태가 갈수록 가관이다. 한국기독교 역사교과서 공동대책위원회의 이름으로 주최한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대 토론회’는 한마디로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바벨탑을 쌓기에 급급한 한국교회의 자화상을 그대로 드러낸 자리였다.

역사는 국민 개개인의 가치와 사관에 따라 당시의 상황을 판단하고, 새롭게 조명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는 바벨탑을 쌓는데 매진해 온 교회지도자들이 주관한 참담한 자리였다는데 이의가 없다. 아니 목사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일본제국주의의 DNA를 물려받은 사람들에게 면죄부와 함께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조선침략을 정당화 해 주는 자리였다는데 이의가 없다. 그것은 이날 공청회 발제자와 지정토론자들의 발제문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편파적인 토론회였다는 것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를 않는다. 토론회가 공정하기 위해서는 공정성 있게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는 인사와 반대하는 인사를 함께 초청했어야 했다. 친일과 독재를 정당화 해 주는 인사들만으로 개최한 토론회는 분명 잘못되었다. 토론회의 발제자를 공정하게 선정한다는 원칙을 잊은 처사이다.

한국교회가 이 같은 토론회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 동의 한다. 그렇지만 한국교회가 처음부터 주장한 국정 역사교과서 종교 간의 형평성의 문제는 온데간데없고, 일본제국주의와 독재정권을 정당화 해주는 공청회를 열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말하는 정치적 중립인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몰각한 한국교회가, 아니 바벨탑을 쌓는데 급급한 한국교회가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국정교과서 편찬을 조언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

특히 한국교회는 일본제국주의의 국가주의에 굴복하며, 신사참배에 적극 참여하는 배교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또 일본제국주의 아래서부터 지금까지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려왔다. 일본제국과 북한 김일성의 ‘피묻은 손’을 위해서 기도도 했다.

또 군사독재정권의 가장 큰 후원자였다. 권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며, 말이다. 특히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조선의 젊은 청년과 여성들을 향해 “황국의 신민으로서 ‘정신대’와 ‘일본군’에 입대 할 것”을 연설까지 하고 다닌 역사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또한 영미 상업자본주의의 지배자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상황에서, 참담한 토론회는 당연하다.

한국교회의 시각이 이러한데, 국민들이 교회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묻고 싶다. 교회의 이러한 잘못을 잘 알고 있는데, 깨어난 지식인들이 교회에 남아 있겠는가(?) 또한 강단에서 맘몬, 즉 돈을 외치고 있는데 가난한 교인들이 교회에 남아 있겠는가(?) 분명 한국교회는 천박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서 성장했다는 사실을 몰각한 것이다.

신구약성서 전체의 흐름을 보면, 하나님은 가진 것 없는 떠돌이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시고, 이들을 통해 새 역사를 이루었다. 거대한 권력인 바벨탑을 무너트리는데 이들을 이용하셨다. 그렇다. 바벨탑을 쌓아 자신의 권력과 욕망을 마음껏 채우기에 급급한 한국교회가 주최한 이번 역사교과서 공청회에 대한 분명한 답이 나온다. 자신의 권력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열린 공청회였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경비(돈)’을 마음껏 외쳐 된다. 또 목사는 누구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다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몰각하고, 참담한 복음전파는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국교회에 아무런 소망을 가져다가 줄 수 없다.

일본제국주의를 정당화 해 줌으로써, 과거 하나님을 부인한 잘못, ‘피 묻은 손’을 위해 기도한 잘못,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자신의 이익을 채기기에 급급했던 잘못 등등을 덮기 위한 참담한 토론회는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어버릴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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