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같게 하셨네

▲ 정 재 영 장로
현대시의 특징 중 은유라는 면에서 볼 때 종교적 의도가 드러나는 마지막 연은 시의 이론적으로 지적을 받을 수 있는 점이다. 그러나 사실성과 보편성에서 감동을 주는 묘사와 노출을 통한 진술이라는 양면의 미학적 가치가 은유와 관계없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보여주는 면이기도 하다. 

 첫 연에서 ‘없다’는 것 세 가지와, 반대로 둘 째 연에서 ‘있다’는 세 가지의 존재의 유무를 통해 인간과 하나님의 다름을 깨닫는 고백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없는 것은 ‘재물. 지식. 건강’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보편적 소유개념이지만, 시인은 ‘보는 것과 듣는 것과 느끼는 것 특히 사랑을 감각할 수 있음의 특수성을 말한다. 이 말은 서로 상반적인 요소 즉 육체적인 면이 아닌 영적인 것을 소유했다는 뜻이다.

 전자는 유물론적 사고라면 후자는 유신론적 사고다. 결론적으로 3연에서 없는 것과 있는 것을 동시에 허락하시는 신앙 대상자에 대한 섭리를 말함으로, 소위 융합시학의 이론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시적 구성상 기발성(컨시트)을 생성하여 심미적 감동이 오는 것이다.

 어느 경우나 시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양극화 작업이 미학성을 이루는 가장 효과적 방법임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두에 전제한 종교시에서의 은유의 범위, 즉 은폐시키는 기준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순수예술문학을 위한 것이라면 철저히 지켜야 할 수사법이지만 종교적 주제를 일반인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면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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