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인 ‘탐내지 말라’는 탐심을 버리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계명은 탐심에 눈이 먼 나머지 바벨문화를 이 땅에 세우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할 것 없이 네 이웃이 소유한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탐심에 대한 근원을 뿌리 채 뽑아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열 번째 계명을 주셨다. 한마디로 과부나, 고아나, 종이나, 장애인이나 할 것 없이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열 번째 계명을 주신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약자들을 위한 법은 출애굽기 22장20-26절에 잘 나타나 있다.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주면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야훼 하나님은 과부나, 고아나, 종이나 할 것 없이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는 분이다. 야훼 하나님은 이들이 호소하면, 그 호소를 들어주시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삼은 이집트를 벌하셨듯이, 이스라엘 백성도 벌하시겠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곳이 없는 약자들을 돌보시고,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약자들을 억압할 경우, 똑 같이 벌하시겠다는 것이다.

이 계약은 중심은 생명이다. 이것의 목표는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인 과부, 고아, 떠돌이들이 안심하고 사는 정의와 평화가 흘러넘치는 생명의 다민족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이다. 그들이 생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도피성의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야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세 가지 약속을 했다. 땅과 창성한 후손, 민족이 서로 축복하는 정의와 평화의 공동체에 대한 약속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가나안 땅에서 수많은 해방된 종족들의 평화의 공동체를 이룩하셨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기아, 종족간의 갈등은 사회적 약자들을 사지로 몰아내고 있다. 수많은 이웃들이 전쟁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기아로 인해 굶주림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전쟁과 기아, 그리고 내전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조국을 버리고,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 망망대해를 떠돌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수장되는 피조물들이 연일 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한마디로 정의와 평화의 생명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다.

스웨덴의 심리학자 칼 융은 어떤 종족이건 그 종족이 형성되는 시초의 정신이 ‘알케타입’이 되어 유전된다고 말했다. 알케타입은 어느 공동체이건 소유하는 집단적인 무의식으로 그 집단이 문제에 부닥칠 때, 삶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다가 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출애굽공동체는 생명공동체의 원형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곤경에 처했을 때, 출애굽 정신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한민족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IMF 당시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국민 모두가 ‘금모으기운동’을 전개했던 경험이 있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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