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이 시작하는 첫 절기는 대림절(待臨節, Advent)이다. 대림절은 12월 25일 성탄절 이전 4주간의 기간을 말한다. ‘오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한 대림절은 2,000년 전 베들레헴 땅에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앞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기다린다는데 의미가 있다.

대부분의 교회나 성도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절기로 대림절을 맞고 있다. 그러나 대림절의 두 번째 의미인 예수님께서 언젠가 우리에게 재림주로 오실 것이라는 더 크고 중요한 의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또 잊고 지내는 것이 사실이다. 대림절을 예수의 초림을 감사하는 의미로도 지켜야 하지만 언젠가 우리에게 심판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의미도 매우 크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대림절에는 인류를 위해 오신 예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 주변의 어렵고 힘든 사람들과 함께하고 이들을 위로하고 돌보는 것이 이 절기가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영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종말과 나아가 역사와 인류의 종말을 생각하며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인지, 겸허하게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교회가 교회력의 첫 절기인 대림절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은 성탄절이 연말연시와 겹치면서 세속적으로 들뜬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교회들까지 성탄절의 의미를 제대로 가르치고 지키기 보다는 들뜬 분위기에 휩싸여 먹고 마시고 쇼핑하고 선물을 고르며 망년회 파티를 즐기는 절기로 묵인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대림절에서 성탄절에 이르는 4주간은 그리스도께서 이 죄 많은 세상에 오신 참뜻을 묵상하며 죄에 묶였던 우리들이 오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과 은총의 빛을 바라보는 절기이다. 그래서 어두운 세상 가운데 빛을 기다리며 참회하고 깨어 기도하면서 참고 기다리는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대림절이 ‘겨울의 사순절’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만큼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참회와 절제를 실천하자는 의미인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거듭되는 경제 한파 속에서 멀쩡하던 가정이 파괴 해체되고,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은 가장들이 노숙자로,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여 길거리를 떠돌고 있다. 갈수록 심화되는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우리 사회 건강성의 지표인 균형을 허물어뜨린 지 오래다. 자유를 억압당한 채 기아에 신음하는 북한동포와 목숨을 걸고 탈북해 이 땅에 정착한 탈북민, 단일민족 순혈주의의 그늘에서 눈물짓는 다문화가정들의 삶은 너무나 퍽퍽하기만 하다. 이들을 향한 한국교회의 관심과 시선이 과연 엄동설한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는 기다림의 종교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고 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 문제는 주님을 기다리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해 온 회개와 금식, 묵상과 경건이라는 자리에 축하행사와 이벤트, 파티와 선물이 슬며시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데도 별로 거부감이 없다는데 있다. 쾌락을 쫒는 대림절, 주객이 전도된 성탄절에 우리는 과연 누구를 기다리는가.

이제 주님께 되돌아가기 위해 묵상 가운데 내 안의 골짜기, 높은 언덕, 굽은 곳, 거친 길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여 새롭게 뒤집어 바꿔야 하겠다. 주님께 되돌아갈 때 인간이 얼마나 존귀하고 자유롭고 평등한지 알아차리게 되고, 비로소 순수하고 사랑 지극한 마음으로 주님을 뵈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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