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새해 벽두부터 떠돌이들에 대한 참상이 세계 언론을 통해 안방에 전해지고 있다. 지난해 터키 해변에서 주검으로 떠오른 꼬마 아일란 쿠르드의 비극이 그대로 지중해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두 살배기가 바위에 부딪혀 희생을 당한 것이다.

쿠르드의 죽음이후 유럽과 세계는 그의 죽음 앞에 고개를 숙였다. 나라마다 난민들에 대한 수용정책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얼마가지를 못했다. 나라마다 밀려오는 난민들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한마디로 떠돌이들의 고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언론에 따르면 두 살배기 어린아이의 주검은 난민들로 가득 찬 고무보트가 2일 그리스 아가토니시 섬 부근에서 바위에 부딪쳐 전복되면서 비롯됐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상황에서 위험한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난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사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고였다.

이 때 두 살배기 아이 1명이 익사한 것이다. 아이의 주검은 현지 어부들에 의해서 건져졌다. 이 참담한 현실을 그대로 세계 언론은 세계민족의 안방으로 흘러 내보냈다. 지난해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을 건져 올렸을 때보다는 덜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세계 사람들의 감정이 무디어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과 존엄성을 상실한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분명 이 아이는 생명의 존엄성을 상실한 세계민족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아니 살해당한 것이다. 성서는 분명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떠돌이들과 함께하시고, 그들 속에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몰각한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이번에도 두 살배기의 희생 앞에서 제1세계의 언론과 사회단체들은 일제히 논평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의 희생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도 떠돌이들을 위한 정책을 시원하게 내 놓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MOAS 창립자이자 미국 기업가인 크레스토퍼 카트램본은 “난민 사태의 가장 어린 희생양을 마주했다. 안전을 위해 이주하다 목숨을 잃은 수천 명의 사람들을 상기시키는 비극적인 사례이다”고 두 살배기 어린아이의 죽음이 주는 떠돌이들의 아픔을 평했다.

지중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은 두 살배기 어린이의 어머니를 포함해 탑승객 39명을 구조해 외부의 도움을 요청했다. 어부의 구조로 39명의 떠돌이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난민 해상 구호단체인 해상난민구조대는 해안경비대와 힘을 합해 생존자들을 사모스 섬 피타고리오 항으로 옮겼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늘도 지중해를 건너는 떠돌이들의 희생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들의 울부짖는 ‘한의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날 구조된 떠돌이들도 어디에 정착해야 할지를 모르는 불투명한 상황에 있다. 또 10명은 저체온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날씨가 매우 추워졌다. 바다의 수온도 상당히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난민들의 목숨을 건 지중해 항해는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지중해를 건너,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에 도착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한해동안 유럽대륙에 발을 들인 떠돌이들은 100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전쟁과 폭력, 그리고 기아가 만연한 시리아를 비롯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출신들로 보다 나은 삶을 찾아 그리운 고향을 버리고 탈출한 사람들이다. 그래도 이들은 생명을 부지했다. 그러나 많은 난민들이 지중해에서 수장되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라도 제1세계를 비롯한 지중해를 떠도는 떠돌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어야 한다. 이미 지중해에 수장된 수많은 떠돌이들의 ‘한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들은 분명 누구인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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