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저 옛날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참혹하게 멸망한 적이 있다. 후대 역사가는 그때 나라가 망하게 된 이유를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그 목을 굳게 하기를···”(왕하 17:14) 라고 간결하게 전하고 있다(왕하 17:6-23).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고’ ‘목이 굳어’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비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듣지 않고 목이 굳은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 가를 들려주신 바가 있다. 포도원 농부 이야기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포도원 농부처럼 아끼고 사랑하셨음에도 농부들은 끝내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를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탐욕 때문이다. 하나님의 것을 제 것으로 만들려는 탐욕이 그 같은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사도 바울 역시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라고, 듣지 않고 목이 굳은 이들을 향해 꾸짖은 바 있다. 바울이 말하는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범용적으로 남의 험담을 하는 이들을 말하는 것 같으나, 그보다는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들은 남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음으로써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다. 바울은 그들의 말로에 대해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진리를 물리치고 옳지 않은 것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진노와 벌을 내리실 것”(롬 2:8)이라고 엄중한 심판을 말한다.

듣지 않고 목이 굳은자들의 특징이 있다. 옳고 그름보다 이합집산으로 세력을 규합한다. 법과 정의보다 파당의 힘을 더 믿는다. 이권을 독점하고, 진실을 변조하고, 거짓을 일삼는다. 법의 이름으로 남의 재산을 강탈하고, 심지어 성소까지 침탈하는 야만적인 일을 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돈과 권력과 법이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세상을 편안하게 살려면 그들과 적당히 타협하며 화친하게 지내야 한다. 그들과의 불화는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를 개의치 않고 목이 곧은 이들과 결별을 선언한다.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양심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영광이 아닌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게서 구원의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그런 바울을 동족에 대한 배신자로 낙인찍고 핍박했다. 오늘날도 많이 보는 장면이다. 그나저나 우리는 바울의 결별에서 복음의 희망을 본다. 하지만 세상 권세와 화목하게 지내는 걸 자랑으로 여기는 교회 지도자라면 결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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