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인생의 교차로를 만난다. 교차로에는 오래 머물 수가 없다. 반드시 어느 한 길을 속히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설 때가 있다.

인생은 선택이다. 선택에 따라서 인생과 그 종국이 결정 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두 길이 있다고 하신다.

하나는 좁은 길이요, 다른 하나는 넓은 길이다. 그 길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좁은 문과 넓은 문이다. 선택하여 들어가고 걸은 그 결과도 당연히 두 가지다. 영생과 멸망이다.

이 좁은 길과 넓은 길이 교차되는 곳에서 넓은 문을 선택하여 넓은 길을 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좁은 문을 선택하고, 좁은 길을 걷는다.

넓은 문이 무엇인가? 구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의 구주시며, 그리스도이심을 거부하고 그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문이다. 그 넓은 문을 들어서면 그 문 뒤로 뻗어 있는 길이 몹시 넓고, 편하고,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길이어서 안심하고 그 길을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문이고, 길이다.

넓은 길이라고 하면 미국 뉴욕에 있는 브로드웨이가 생각난다. 맨해튼에서 시작해서 허드슨 강을 중심으로 알바니까지 이어지는 장장 200㎞가 넘는 굉장한 길이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길고 넓은 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브로드웨이에는 세계 금융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월스트리트 가(街)가 있다. 그리고 유명한 대학도 있다. 그뿐 아니라 42번 가(街)에 소위 타임스스퀘어(Times Square)광장이 있다. 거기에는 음란하고 추악한 스트립 바가 많고, 포르노 영화를 밤낮없이 상영하는 극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서있다. 그리고 이름난 매춘 업이 여기저기 성업(?) 중이기도 하다. 육체의 즐거움, 쾌락, 인생의 재미를 맛보려고 그곳을 찾는 사람은 술과 여자, 마약과 도박 같은 것들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즐기고 놀 수 있는 곳이 바로 타임스스퀘어 광장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몰린다. 그야말로 향락의 거리다.

주께서 넓은 문, 또 넓은 길이라고 표현한 세상이 대략 이와 비슷한 세상과 사람들일 것이다. 좁은 길, 좁은 문은 무엇인가? 좁은 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나의 구세주, 구원자로 영접하고, 믿는 진리의 사람들이 들어가고 걷는 여정이다.

누가복음 13장에 좁은 문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 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께 질문한다. “주님, 구원 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13:24)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하고, 실패할 확률이 크다는 것을 경고하신 것이다. 좁은 문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생활을 일컫는다.

우리 주변에는 세상의 좋고, 재밌고 누릴만한 것들을 다 가진 사람들이 꽤 많다. 건강에서부터 부귀와 장수에 이르기까지, 게다가 자녀와 명예, 권세 등등 이것저것 다 누리는 사람들 중에 예수 믿는 것은 실패하는 이가 있음과 좁은 문, 좁은 길을 가려해도 못 들어가고, 걷기를 포기할 사람들이 참 많을 것을 주님께서 경고하셨다.

오늘과 앞으로의 시대는 사람들이 좁은 문을 기피하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좋아하는 세태가 더욱 증가가 할 것이다. 흔히 요즘 세태를 일컬어 개성이 강한 시대, 즉 개성화 시대라고 말한다. 이 시대는 상품의 다양화로 자기 개성대로 선택할 수 있다. 심지어는 자기만의 주문생산도 가능하다. 케이블 및 위성TV시대가 되어 2~300여개의 다 채널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다. 이 같이 개성이 다양하고, 강한 세태에서 고지식하고, 고집스럽고, 획일적이고, 절대 진리를 주장하는 것을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복음은 지난 20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이 세상에 전파되어 왔다. 하지만 개성과 주장과 욕구가 강한 현대인들에게는 너무나 고지식하고, 일방적인 독선으로 보인다.

'오직 예수'라는 말 자체를 거부하며, 획일화 된 진리를 거부한다.

그리고는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적인 사상이나 가르침을 선호한다.
종교마저도 내 구미와 개성에 맞게 선택하고, 또 종교마다 구원이 있으니 구태여 어렵고, 분주하고, 원칙에 메이는 종교를 찾을 일이 없지 않겠는가. 당연히 넓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아마 이 넓은 길은 곧고, 더 넓게 확장이 되어 무한질주의 하이웨이가 될 것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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