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우리의 아이들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어야 할 부모에 의해서 살해당하고 있다. 아니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같은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해지고 있으며, 국민들은 자녀 살해에 대해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계모의 폭행에 의해 아이들이 살해를 당하고 있는 것과 사뭇 다른 것이어서,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가 땅에 떨어질 때로 떨어진 현대가정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부모에 의해서 살해되는 아이들은 분명 부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며, 힘이 없어 죽임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더욱이 가슴 아픈 것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목사아버지가 중학생 딸을 5시간 동안 폭행,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것은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훈계를 넘어선 폭행이며, 살인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를 않고, 죽임을 당한 딸의 주검를 11개월이 넘도록 집안에 방치했다는 것이다. 기도하면 살아날 것 같아 살해한 딸의 주검을 방치했다는 변명, 누가보아도 신학대학교 교수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잘못된 신앙이다. 목사아버지와 계모는 아동학대치사죄와 살인죄가 적용돼 구속됐지만, 이 사건은 한국교회 안에서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소녀는 아버지가 재혼한 이후 계모의 여동생 집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가출해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하룻밤을 재워달라’고 부탁도 했다. 그러나 담임선생은 이 소녀가 가출했다는 소리를 듣고, 귀가 할 것을 설득했다. 실질적인 보호자였던 이모에게 소녀를 인계했다.

이 소녀는 다음날 찾아온 부모에 의해서 한차례 폭행을 당하고, 집으로 끌려가 5시간동안 구타를 당한 것이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꿈 많은 소녀는 이렇게 죽임을 당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 결과, 대퇴부에세 선명한 출혈이 관찰됐다.

13살 소년의 목사아버지에 의한 ‘죽임’은 딸의 문제이기 이전에, 친부와 계모의 문제가 더 컸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13살 소녀는 분명 어느 아이와 마찬가지로 꿈 많은 소녀였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과 그 자리를 빼앗은 계모의 사이에서 엄청난 충돌을 일으켰을 것이다. 또한 계모에 대한 감정 또한 좋았을 리 없다. 문제는 이 소녀의 살해가 유명 신학대학교의 교수이며, 목사인 아버지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소녀의 목사아버지에 의한 죽임은 오늘 하나님나라 운동의 현장에 있는 10만명의 목회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 왔다. 또 선교의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다 딸을 살해한 교수로부터 교육을 받은 목사후보생들의 충격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또 학교의 명예도, 교단의 명예도 크게 실추시켰다.

계모가 살해아버지의 제자라는데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먼저 자녀를 생각하고, 자녀들과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어야 했다. 부모의 아이에 대한 몰이해가 가져다가 준 비극이다. 그렇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있다.

양주에서는 엄마가 5살배기 아이를 살해했다. 그것도 아이가 아빠만 좋아한다는 이유에서 이다. 그리고 아이가 잠자다 죽었다고 위장했다가 들통 났다. 부검 결과 사인이 ‘익사’로 밝혀졌다. 이같은 장면은 인근의 CCTV에 그대로 녹화되어 있었다. 경찰이 수상히 여겨 엄마를 추궁해 살해 했다는 자백을 받아 냈다. 또 아이를 토막 살해해 냉장고에 보관한 비정의 아버지가 구속됐다. 또 전기 코드에 젓가락을 넣는다고 3살난 아이를 살해한 계모 등등…

슬프다. 이렇게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있다. 죽임을 당한 아이들의 ‘한의 소리’ 아니 ‘피의 절규’가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의 귀전을 울리고 있다. 하나님도 이들의 죽임 앞에 슬퍼하며, 애통하고 계시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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