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호 관 목사
금년으로 3.1절 97 돌을 맞는다. 북한에서는 이 날을 인민봉기의 날이라 하고 김일성의 아버지가 앞장을 섰고, 당시 8살 소년 김일성이가 만세를 불렀다고 선전한단다. 우리의 젊은이들 중에도 국민누나 류관순 님을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니 후손들의 바른 역사의식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삼일절 전야에 만세운동의 중심에 섰던 교회를 돌아보고, 오늘의 교회를 살핀다. 그 당시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역사일천한 유아기에 불과했다. 20세기 초 우리나라 전체인구는 2000만이 안되었고 1919년 당시는 2000만 정도였던 것으로 통계는 기록하고 있다. 북간도를 비롯한 중국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2000만이 조금 넘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계다. 이 땅에 복음의 작은 씨앗이 떨어진 시기는 시각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동강변에서 참수형을 받아 조선선교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순교의 첫 열매가 된 영국 웨일즈 출신 젊은 선교사 토마스 목사는 모두 기억한다. 그는 1865년 황해도에 도착하여 2개월 반 동안 한문성경을 전하며 전도하는 한편 조선어를 배우는 일에 힘을 기울이다가 일단 북경으로 돌아간다. 그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만호를 이용하여 조선선교를 제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동강 쑥 섬에서 참수를 당하였다. 그가 순교를 당하는 순간까지 복음을 전한 사실은 그의 목을 친 한 군졸이 훗날 개종하여 밝힘으로 알려진 감동적인 순교사화이다. 한국이 1882년 미국과 수호조약을 체결함으로 쇄국정책의 빗장을 풀고 세계를 향하여 문호를 활짝 열자 미국 장로교와 감리교는 한국선교에 박차를 가하여 정식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했다. 토마스 목사가 순교한 이후 20년쯤 지난 1884년 9월 북장로교의<알렌> 선교사, 감리교의 <아펜젤라> 선교사가 의료선교사로 들어 왔다. 그리고 이듬해에 부활절(4월5일)에는<언더우드> 선교사가 입국함으로 본격적인 한반도선교가 시작된 것으로 한국교회 사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기미년 3월의 한국교회는 선교 35주년을 맞이하는 봄이었다. 그동안 가히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었다고는 하나 복음화 율은 겨우 1.5% 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그 교회는 살아 있었다. 흑암에 있는 백성들에게 빛이고, 소금이었다. 일제가 마지막 극성을 부리던 그때 선도에 서서 민족을 이끈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웅변하고 있다. 김구, 안창호, 류관순, 서재필, 이상재, 이준, 조만식, 남궁억 이외에도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한 궁창에 빛나는 별 같은 이들이 수 없이 많았다. 이분들이 일제의 폭압적인 수탈 정책과 간교한 식민지배 논리에 맞서 당당히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정의와 자유의 바른 개념이 무엇인지를 배웠기 때문이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에 16인이 기독교인이었으며 삼일 만세운동과 관련하여 일제 헌병대가 1919년 말까지 체포 구금하고 조사한 사람들의 종교적 분포를 살펴보면 총 피검자 19,525명 중 17.6%가 기독교 신자였고, 특히 여성의 경우는 65.5%가 기독교 신자였다니 민족과 함께 고난당하고 핍박당한 교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운동이 실패하면 교회에 무서운 환란의 피바람이 불어 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면서도 신앙의 자유, 민족의 자존을 위하여 이 운동에 앞장섰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역사 앞에 송구하고 부끄럽지 아니한가? 주님께서 친히“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5:13)고 경고하신 그 말씀대로 아무짝에도 쓸데 없게 되어서 밖에 버려진, 그래서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는 현실을 어찌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97년 전에는 겨우 1.5%의 염도로 그렇게도 위대한 힘을 발휘했는데 한 때는 25%의 염도를 자랑하던 교회가 아니었던가? 그 영광은 그만 두고 1000만 성도라 해도 20%가 된다는 통계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는 그 통계가 허수요, 거품이든지 아니면 정말 맛을 잃은 소금이 되었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영향력을 상실한 교회는 불 꺼진 등대요, 맛 잃은 소금일 뿐이다. 기생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단꿈을 꾸다가 머리 깎이고 두 눈을 뽑힌 삼손과 같지 아니한가? 맘몬신의 간교한 술수에 속고, 세상적인 성공철학과 물량주의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않는 한 97년 전 태극기를 휘날리며 수난의 민족에게 소망으로 우뚝 섰던 그 찬란한 교회 상을 다시 보일 여망은 없을 것이다.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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