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성공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는 이민자들의 생각과 다를 바 없었다. 성공한 사람만이 기억되는 세계에서 그들이 보고 체험한 하나님은 재물을 좋아하는 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수고한 결과로 환심을 살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따라 사람의 허물을 사하시고, 자비를 베푸신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5). 우리가 만일 이 세상에서 성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험한 시절에 겪은 낡고 병든 생각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성공하던 실패하던, 내 허물을 기억하지 아니하시고 내게 자비를 베푸신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 43:19a).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샘이 흐르게 하신다. 사람이 노력한 보상으로 기적을 베푸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불가능의 가능이시다.
가버나움에서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고치기 위해 지붕을 뚫고 달아 내렸을 때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신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려 한다”(막 2:10)고도 하신다. 예수님의 이 충격적인 선언은 옹벽처럼 굳어버린 종교적 편견과 관습의 껍질을 깨뜨리고자 함이다.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죄의 굴레를 씌워 아예 저주받은 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서도 태연한 이들을 향해 드러내놓고 하신 이 말씀은 그 결과에 대한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오늘도 예수께서는 당신의 희생을 감수하며 나의 오만, 편견, 무감각을 깨뜨리기 위해 내게 다가오신다.
삼일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