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100여년전 8월29일을 기억하는가? 경술년에 당한 나라의 수치라 하여, 경술국치(庚戌國恥)란 표현을 하며, 또한 한일 병합 조약(韓日倂合條約, 한일 합방 조약(韓日合邦条約), 한일 병탄 조약(韓日倂呑條約), 한일 합방 늑약(韓日合邦勒約) 또는 국권피탈(國權被奪) 등의 표현을 하기도 한다. 이는 1910년 8월 22일에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맺어진 합병조약(合倂條約)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으며, 조약을 공포한 8월 29일에 이루어져 대한제국은 이 길로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인 것이다. 따라서 경술국치 100년에 즈음하여 교훈적으로 생각해 보자.

한 손님이 어느 음식점에서 토끼고기 요리를 시켰다.
그러나 토끼고기는 별로 없고 다른 고기 투성이었다.
손님은 주인을 부러 물었다.
손님 : 여보시오 아무리 내가 서울사람 처럼 보이기로서니 그래 이걸 토끼고기 요리라고 내 놓는단 말이요?
주인 : 정말 죄송합니다.
요즘은 토끼가 좀 귀해서요. 그래서 토끼고기에 말고기를 좀 섞었습지요!
손님 : 대체 얼마나 섞었기에 맛이 이렇소?
주인 : 반반씩 섞었습니다.
토끼 한 마리에 말 한 마리죠!("논리를 모르면 웃을 수도 없다"에서)

주인은 양심의 가책이란 아예 기대하지 말라는 투의 대답이다.

어찌 보면 손님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억지 대답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1910년, KBS TV 와 MBC TV의 6.25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이모든 아픔의 원인이 일제에게 36년의 피지배를 당한 연속선상에 있음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반도를 폐허와 한 6.25는 자신들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알고 사죄해야 할 터인데도 그들은 "대한민국을 근대화를 시켰다"는 등 참으로 엉뚱한 망발을 쏟아내고 있음에 통분함을 금할 수가 없다. 참으로 양심의 가책을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무뢰한 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기에 그들의 미소 속에 진실이란 찾아보기 힘들고 항상 음흉함이 있음을 저버릴 수가 없다. 물론 우리는 복음 안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한다. 그러나 아직도 곳곳에 그들의 침탈의 흉터가 잔존하고 있는데도 진심어린 회개는 없이 우리들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망발을 쏟아 내면서 가까운 이웃 운운하니 이를 어찌 신뢰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다시는 그들이 침략야욕을 갖지 못하도록 경술국치(庚戌國恥)를 교훈 삼아 최소한 그들에 상응하는 국방력을 갖춤으로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온 그들의 침략과 침탈에 대처함과 동시에,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무역역조에 의한 경제침탈, 독도문제, 위안부 문제 등뿐만 아니라 일제에 의해 자행된 학살 등을 저지르고도 뻔뻔스러움을 보이는 일제의 일부 지도자들을 보며 거리거리 태극기 계양도 중요하지만, 1919년 3월 1일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선언의 비폭력 만세운동을 한다고, 일제는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탄압과 학살을 시작했는데, “일제의 기록에는 집회인수가 2백 2만여 명, 사망자가 7,509명, 구속된 자가 4만 7천여 명이었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바람이 있다면 일제의 자료가 아닌 대한민국의 조사 자료와 함께 일제는 자신들에 의해 자행된 학살에 대한 참회의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계 22:15).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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