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그리스도인 CEO는 세속의 최고경영자와는 그 성격을 달리 한다. 세속의 CEO는 기업성장을 통한 경제적인 요건의 충족만을 위하는데 그 기준을 두고 있으나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준행해야하는 자이기에 그 경영의 목적이 분명해야한다. 단순히 성장 위주의 방법만을 말하게 된다면 이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며 그 결국은 타락으로 이어 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세속의 CEO들은 명예나 과정(수단)은 문제 되지 않고 결과로만 평가 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그 결과에 대한 부작용이 많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리스도인 CEO는 결과를 생각하기 이전에 그 과정을 더욱 중요시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판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교회가 성장지상주에 빠져 과정을 무시한 결과만을 추구한 나머지 긍정적인 요소도 있으나, 그 보다는 더욱 심각한 부작용에 지배되어 있어 개혁(사도행전 적 초대교회로 돌아가자)자체가 실종됨으로, 개혁을 외치고는 있으나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있어 자못 구호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는 현실을 부인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럼으로 그리스도인은 CEO로서의 명성에 앞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아니해야한다. 즉 오직 예수님을 닮고자하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정만을 무시한 성장주의에 편승하는 세속의 CEO와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에 부조리, 부패의 골을 깊게 하는 가라지나 번식시키거나 회칠한 무덤의 봉분만 높이 쌓아가지 않도록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CEO의 자세? 정의성, 정직성, 책임성을 같고 하나님의 공의(시 7:9)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이 없는 성장은 성장이 아닌 파괴를 불러 올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목사가 되는 과정에 잊을 수 없는 존경하는 스승님의 가르침에 지금도 감사를 드린다. 현제 북한에 봉수 교회 다음으로 재건 된 “칠골교회”를 담임하시고 합동측과 통합측이 분열의 위기에 있을 때에 분열을 막기 위한 조정 위원 중 한분이셨던 “김오성”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을 때에 “일 많이 하려 하지 말고 죄짓지 말라!”라고 하신 말씀과 또한 스승 목사님의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시오!”라는 간절함의 기도가 지금까지도 가슴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주위를 둘러보면, 불의가 성장이나 은혜라는 말로 포장되어지는 가하면, 수단을 하나님 말씀보다 앞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사건들이 보도 될 때마다 이것이 곧 “회칠한 무덤이 아니고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성장에 의한 세속의 CEO와 같은 명예나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인물이 되기보다는 정의롭고, 정직하고, 책임감을 갖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聖徒)로써 나는 “그리스도인 입니다.”라는 고백적 삶의 복을 누리 자들을 통하여 영광을 거두신다는 마음에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1)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2)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3)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4)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5)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6)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 (7)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공의 행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 21:1-7)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 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