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이 시작됐다. 선거가 축제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지 여지없이 선거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기분 좋게 선거 이야기를 하다가도,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면, 험악한 분위기가 갑자기 조성된다. 또 누구인가 중재자가 나타나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한다. 다툼이 있다가도 화해하는 모습은 누가보아도 아름답다.

그런데 유독 기독교의 지도자들만 화해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를 못하고 있다. 한번 토라지면 영원한 적이 되는 것이 바로 오늘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한국교회의 모습도 가관이다. 기독교정치세력화를 말하면서, 기독교 정당은 자그마치 3개로 분열됐다. 기독자유당, 기독민주당, 기독당이 바로 그것들이다.

왜 하나 되지를 못하는가(?) 평신도들은 묻고 있다. 여기에는 당을 이끄는 지도자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교인들은 기독교정치세력화의 길을 쉽게 갈수 있는데, 굳이 어렵게 가야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3당 공히 기독교정치세력화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열을 올린다. 이것이 3당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다. 그리고 3당 모두는 반기독교적인 동성애법을 비롯한 이슬람, 차별금지법, 인권법을 막을 정당으로 기독교정치세력화라는 것을 알리는데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또 3당은 각각 자당이 적임자임을 자처한다.

국민들 역시 반기독교적인 악법들의 문제점과 잘못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3당은 화해할 줄도 모르고, 서로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분명 어느 정도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여의도 국회에 입성할 수 있다는 착각이 짙게 깔려 있다. 과거의 선거에서 증명해 보였듯이 분열된 지금의 상태로는 기독교의 정치세력화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 중론이다.

이렇게 기독교 3개 정당이 하나 되지를 못하고, 각각의 딴살림을 차린 데는 한국기독교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한국기독교는 태생부터 교파주의와 분열주의에 길들여져 있다. 한마디로 한국기독교 130년 분열의 역사였다. 이렇게 분열된 상태에서 교인과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기독교정치세력화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더욱 그렇다. 교회의 지도자 대부분이 기독교정치세력화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3개의 기독정당이 하나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반기독교적인 동성애법을 비롯한 이슬람, 인권법, 차별금지법 등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기독교정치세력화를 주창했던 어른들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또한 반기독교적인 악법을 저지하기 위해 1천만명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기독자유당은 기독교정치세력화를 위한 지지자 1백만명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라는 평가이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멀다. 그것도 기독교정당이 여러 개로 나뉘어져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도 선교사들이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스스로 덫을 쳐놓은 ‘정교분리정책’이 기독교정치세력화의 목덜미를 잡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민족운동과 항일운동을 막기 위해 선교사들에 의해서 정교분리정책이 실시됐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또 박정희 대통령 당시 교회의 민주화운동과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봉쇄하기 위해서 악용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공감했고, 교회는 민족의 아픔과 사회운동을 외면했다.

이를 불식시키는데 상당시간 걸렸지만, 기독교정치세력화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는 모양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과 교인들의 가슴속에는 “종교인들이 무슨 정치냐”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신학자 하비 콕스는 “교회가 사회를 버리면, 하나님은 교회를 버린다”고 했다.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는 건강한 사회와 국가발전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왕이면 기독교 3개 정당의 대표들이 손을 맞잡고 하나가 되기를 선포했다면 기독교정치세력화가 더욱 빠르지 않았을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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