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마가가 말하는 ‘레기온’은 현실에서 누구를 지목한 것일까? 우선 당시 유대민족을 억압하는 로마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대인에게 로마야말로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의 실체이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로마에 저항하는 또 다른 레기온 즉 ‘나’는 없고 ‘우리’라는 집단의식만을 지닌 존재. 예컨대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는 명분으로 자국민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자들. 민중을 대변한다는 공산주의자들이 민중에게 악마가 되고,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자국민을 억압하는 자들. 민중운동 혹은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내편이 아닌 모두를 적으로 여기는 이들 역시 레기온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보이지 않고 돈만 보이고, 삶의 다양성을 보지 않고 획일적 가치만을 고집하는 자들. 패자는 보이지 않고 승자만 본다면 그 역시 레기온이다.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 집단 몰사한 것은 레기온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떼로 움직이고, 결국은 떼로 죽음에 이르는 운명 말이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선할지라도 ‘나’를 상실한 ‘우리’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바로 귀신들린 것이고, 레기온에 사로잡힌 것이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곳곳에서 레기온이 발호하는 것 같아 생각해본 것이다.
삼일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