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세상은 교회가 삶이나 사회생활에 표준을 제시하는 향도(嚮導)적 역할을 감당하기를 기대한다. 만약 교회가 그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디로 흘러가겠는가?

일 하나에도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대인관계(對人關係),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주께서 원하시는 방향과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인생과 예배와 대인 관계의 표준을 결코 낮추어선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은 분명한 원칙이 있었다. 하나님 앞에 선 사도로서 하나님에 대한 원칙과 대인관계에서의 분명한 원칙들이 분명했다.

예수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들도 선명한 원칙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원칙이 분명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돈은 손해를 보더라도, 주님 향한 믿음은 결코 손해 보지 않으리라”를 믿음의 원칙이 있는 성도와 원칙을 바꾸는 성도가 있다면, 과연 누가 믿음의 진보와 일관성을 경험하겠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원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먼저 실천하고, 자기에게 먼저 적용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적용하기를 원했던 원칙들이 고린도전서 10:23~11:2에 발견한다. 사도 바울은 이웃의 유익(有益)을 먼저 생각하는 원칙이 있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24).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다운 성도가 되려면 이웃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고린도 지역은 상업이 발달하고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곳이다. 시장에 나오는 고기들은 이미 우상 제물로 드렸다가 다시 시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이 가(可)한가를 사도에게 질문한다.

이에 사도는 교회답고 성도다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원칙을 밝힌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어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33).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서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여 예수님께 나올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미 예수 믿는 우리들은 예수 믿는 믿음의 원리가 삶에 배어들어 이웃이 본받도록 그들의 삶을 이끌 것을 말씀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은 결코 아첨하는 것과는 다르다. 상대를 존중함으로 그 영혼이 예수를 만나게 되고, 예수 믿는 믿음공동체에 들어와서 예수를 믿게 함으로 그리스도인의 품격을 올리는 것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을 절제하여 덕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모든 것이 가(=Lawful, Permissible)하나 모든 것이 유익(=Profitable, beneficial)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Constructive, build up)이 아니니”(23).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영적인 면에서 과거의 모든 죄와 허물로부터 용서받고, 참된 자유를 이미 누리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자유를 오용해서는 안 된다.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에서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이기에 그것을 먹을 수 있는 큰 믿음이 있지만(26), 문제는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켜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가하여도 유익한 것이 못된다. 따라서 내게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더라도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 바울은 고기 먹는 문제에 대해서 처음에는 양심을 위해서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하면서도(27), 이웃의 양심과 믿음을 위해 먹지 말라 고도 권면한다(28). 그리고 사도는 한 단계를 업(up)하여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강하게 권면한다(33).

교회생활과 대인관계의 원리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려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도가 제시하는 원칙이다. 이기주의자로 가득 차 있는 곳은 지옥이 된다. 따라서 이타주의자(利他主義者)로 가득한 곳은 천국이 될 것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