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지금까지 교회 신자들은 세상에 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 영혼구속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본연의 사명이었다. 본래 교회는 하나로 계시되었는데 현대 교회는 성경해석의 차이에 따라 신학을 달리하는 분파가 수도 없이 갈라져 누가 옳은 진리를 전파하는지가 분별하기조차 어려운 시대이며, 기존 교회의 설교자들도 자신만의 차별성을 나타내기 위해 범종교적인 수단들을 도입해 고만고만한 동일한 성경 지식 위에 세속적인 신비감과 토속적인 신령함(?)을 설교의 수단으로 사용해 카리스마와 세속적 신통력을 앞세우게 된다.

거듭나지 못한 지도자들은 세상의 원시 부족 종교가 가진 신비스러운 행동을 도입하여 성경과 혼합해 성도들의 마음을 집중시키려 하는 시도를 꾸준히 시도하자 성도들은 외면하는 것 같으나 결국 세속종교에 빠져드는 현상이 기독교를 잠식하고 있는 추세다. 오히려 기독교를 가장한 사교들은 십자가를 앞세우고 거짓 교리를 진리로 가장해 설득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기존 성도들은 거짓 교리에 빨려들어 자신들이 무엇에 취했는지 또는 뜨거운 불인지도 모르고 불나방처럼 달려들다가 이제는 새로운 흥미 거리에 눈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손에 들려진 첨단 기계에 익숙한 성도들은 생활전반을 기계에 의존하고 있으며, 사람의 자리에 로봇이 차지하고 있는 일에 이미 익숙해졌다. 이러한 현상을 시대에 걸 맞는 자연 현상으로 받아드리는데도 익숙하다. 이러다가 인간의 활동영역은 급격히 줄어들고 그 자리를 기계가 차지하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인다. 이제 정통 기독교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성직자를 대신한 AI에 강단을 내어주지 않을까?

사회의 모든 건물 관리와 사회복지시설, 어린이 집, 유치원, 심지어 중고등, 대학에서도 CCTV는 생활의 도구로 자리 잡았다. 교회도 평소에 비어놓고 감시는 감시 장비에 맡겨 안심하고 있다. 예전에 사찰 집사가 하던 일, 조금 큰 교회는 경비집사들이 하던 일을 기계가 맞게 되어 자연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심지어 수년전부터 대형 교회에서 지 교회를 개척해 성도들을 먼 거리에 있는 본 교회로까지 오는 수고를 덜게 하기 위한 조치로 지 교회에 출석토록 하는 배려는 좋았으나, 주일이면 본 교회 목사의 설교를 방청하게 하기위한 영상설교를 시청하도록 하기위해 영상장비를 설치해 예배드리는 모습이 당시는 생소하였으나 이제는 일상생활이 되다시피 하여 익숙하게 시청하고 있다.

교초기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사람들이 모든 일을 직접 해결하는 사람 냄새나는 훈훈하고 정감이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교회도 세상의 추세에 맞추어 사람대신 기계가 아니면 첨단 과학 문명이 깊숙이 자리해 신을 믿는 곳인지 아니면 과학을 따르는 곳인지 분간키 어렵다. 교회는 이 시대의 과학 문명의 첨단장비를 의존 하는 곳이 아니라, 무엇인가 좀 더 거룩하고 신성한 신과 인간과의 사이에 기계가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보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교회도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존재하기에 세상 풍조와 함께 가는 것을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신과 인간과의 사이에 다른 아무 장애물도 놓지 않고 직접 대화하며 영광을 드리는 본래 모습으로 재현 하였으면 하는데 과욕일까? 과학 문명의 첨단 기기를 부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듬은 돌로 쌓은 제단이 아니라, 순수 자연 돌로 쌓은 제단을 의미하는 뜻이다.

이제 편리함은 주변 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들의 설교도 로봇이 주도할 날이 멀지않았다고 보는 견해다. 현대 목회자들은 교회 일, 교단 일, 연합회 일, 정치 참여, 부흥회 인도, 등등으로 너무 바빠 설교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주일이 되면 선배들의 설교 집 씨리즈에서, 외국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 집에서 적당히 한 편 골라 재탕(?) 한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길 믿고 싶다. 이유는 성도들에게 찬밥을 먹인다고들 비아냥거림이 있으며, 일부 성도들은 성의 없는 설교를 듣느니 차라리 교회에 나오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럴 때에 과학의 꽃인 로봇을 설교자 대신강단에 세워 풍부한 지식으로 입력된 기계 설교자의 설교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게 되는 시대가 이미 교회 문 앞에 엎드리고 있다. 기계 문화에 익숙한 성도들은 별 비평 없이 받아 드리게 되며, 이는 교회가 하루 멀다 하고 분파되고 깨어지고 갈라져 누가 참, 거짓인지 분간키 어려운 현실이 교역자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으며, 무자격자를 양산한 신학계의 진위도 한 몫을 하고 있음이다. 사람의 입에서 나온 설교가 표리부동한 이유다. 늦기 전에 교역자들이여 분주한 일 정리하고 본래 자리에 서라.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담임/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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