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헌신을 어떻게 설명할까? 헌신을 성공과 견주어 보면 그 뜻이 좀 더 명료해진다. 참된 헌신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제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 성공은 야망과 집념의 결과일수는 있어도 헌신의 결과일 수는 없다. 세속에서의 성공은 오히려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외면한 결과일 수 있다. 공직자로서 요청받는 지도력은 어떤 일에 성공한 사람이 아닌 공적 직무에 헌신하는 사람이다. 국민이 좌절하고, 나랏일이 어지러울 때는 어김없이 유능하기는 하지만, 헌신을 모르는 성공한 사람들이 득세할 때이다. 물론 헌신이라 할지라도 누구에게 무엇을 위한 헌신인가도 문제이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헌신과 상전 비위 맞추기 위한 헌신은 같을 수 없다. 민주국가에서 “헌법보다 인간관계”라며 오로지 대통령에게만 헌신하는 사람은 국민에게는 적일 수 있다. 아니 적이 맞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바라시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헌신이다. 무엇보다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나라를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의 첫째 되는 덕목은 헌신이다. 그러지 않았을 때 그와 그의 나라에 재앙이 쏟아진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그런 사람이다. 예레미야에 의하면 여호야김은 “불의로 궁전을 짓고, 불법으로 누각을 쌓으며, 동족을 고용하고도 품삯을 주지 않은” 자이다. 한 나라의 왕이라는 자가 헌신은 없고 탐욕에 눈이 멀어 결국 나라를 파멸케 한 것이다. 그에게 “화가 미칠 것”(렘 22:13)을 선언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두려운 말씀이다. 당신을 따름에는 필연적으로 고난이 따른다는 말씀이 아니던가. 믿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따른다. 믿음이 어려운 것은 헌신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성공의 사람이 아닌 헌신의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능하고 성공한 사람이 아닌, 헌신의 사람을 들어 쓰신다. 격렬했던 국회의원 선거도 끝났다. 너나없이 국민을 진정으로 섬기겠다고 말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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