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줄 알았다.
소리 소문 없이 찾아와서
도란도란 속삭이다
한마디 말도 없이
훌쩍 떠나 버릴 것을

난 첨부터 알았다
고운님
머리 빗어주듯
그렇게 가늘게 내리다가
끝내 아리랑이 되어 사라질 줄을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예쁘기만 했던 우리들의 행복
다 떨궈 놓고서
흔적 없이 그렇게 가버릴 줄을

그래도 행복 했었다
언젠가 너는
소리 소문 없이
다시 찾아올 테니까

▲ 정 재 영 장로
시간에 속하여 변화하는 행복, 즉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결과와 소망을 한 연씩 나누어 그려주고 있다. 행복이란 참 막연한 관념어다. 그것을 감각하는 일도 매우 애매한 일이다. 비록 시는 그 애매성을 형상화로 감각한다 하지만, 시의 드러냄(표현)이 기본적으로 설명이 아닌 묘사의 언어로 보여주는 방법을 택하기에 읽는 사람이 해석하는 일은 각자의 자기 체험으로 연상할 수밖에 없다.

이 시에서 행복을 비유하고자 동원한 사물은 봄비다. 일 년 첫 계절에 내리는 봄비를 고운님과 연결하고 있는 행복은 최고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지, 단순한 남녀관계로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봄비는 여름에 내리는 폭우와 달리 조용함의 이미지다. ‘소리 소문 없이’라는 말이 그것을 금방 떠올리게 해주는 대목이다. 행복이란 예고하지 않고 갑자기 찾아오는 특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울러 행복이 찾아 왔는데도 미처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자는 ‘첨부터 알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훌쩍 사라질 것으로 여겨, 자기의 행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의미로 읽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행복이 모두 사라졌어도 뛀궈 놓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행복이 남겨준 잔여물이라 하겠지만 그 자체마저 행복을 만난 결과로 해석할 때 허무가 아닌 아쉬움일 뿐이다.

마지막 연에서 봄비의 반복성을 통해 회복의 소망을 그리고 있다. 즉 떠났을지라도 재회를 통한 행복의 회복을 믿고 있는 것이다.

봄비는 모든 자연을 사랑하는 존재다. 사랑의 본질을 확대해석하여 봄에 있는 기독교의 고난절과 연결해 본다면 개인적인 사건이 아닌 재림 신앙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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