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보연 교수
5월8일은 어버이날이며, 어버이주일이다. 교회마다 다양한 행사를 준비해, 어버이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오늘 우리사회에서 웃어른에 대한 충효사사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그것은 기계문명의 발달과 함께, 어르신들이 교회와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없는 존재로 무기력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분명 물질문명의 산물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사람은 더불어 사는 존재이다. 사람은 이웃과 고난을 나누며,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이다. 그 고난을 함께 나누는 데 삶의 의미가 있다. 거기에는 기도도, 애원도, 윤리도, 종교도, 사랑도, 평화도, 행복도 있다.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할 사회는 테크놀로지(기계문명) 사회에 이양되어서 기계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의 삶과 죽음에 동참하는데서 멀어지게 했다. 기계문명의 모토는 편리와 대량생산이다. 즉 편리이다. 서구는 오래전에 그 비극으로 인해 울고 있다. 인간의 가치가 파괴되고 있다.

사람이 연로하면 여러 자녀를 두었어도, 양로원을 비롯한 요양원 등 노인시설서 고독을 씹어야 하는 것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심지어 부모를 제주도나, 서울역 등에 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텔레비전이나, 언론매체를 타고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슬픈 일이다.

왜 우리사회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 그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인정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모와 자식 간에 정이 없다. 이웃 간에도 정이 없다. 또한 인간을 테크놀로지에 모두 내 맡겼기 때문이다. 기계문명은 인간 사이를 깨고 들어와 사람들의 생활을 기계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기계문명에서 해방을 부르짖고 있다. 기계문명의 편리함을 추방하고 원시적이지만, 서로 고통을 나누는 삶의 양식을 선택해야 한다는 목소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계속해서 좌절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감시하고, 사람은 노동단위로 전락시켰다. 자본주의 사회도 테크놀로지에 의해 그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은 우리사회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 안타깝다.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고향도 버렸다. 가족도 버렸다. 부모도 버렸다. 돈을 벌기 위해 냉엄한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윤리를 파괴하는  뿌리 없는 떠돌이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다. 한마디로 세상은 돈으로 계산되며, 돈이 있는 부모는 자녀들로부터 대접을 받지만, 돈이 없는 부모는 그렇지 못하다. 심지어 부모들이 정부로부터 받고 있는 얼마 안 되는 고령연금 마저도 빼앗아가고 있다.

여기에다 정치인들도 국민들의 표심을 사고 있다. 이제는 사람이 사람을 보면, 저게 고발대상인지 아닌지를 생각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보이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의도에서 모여도 문제의 집단이 아닌가 색안경을 끼고 들여다가 본다. 이러한 불신풍조는 국민들을 모래알처럼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가장 많이 대두되는 말이 인간성 회복과 효친사상 회복, 사람 존중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기계문명에 밀려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는 예수님의 사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친다. 예수님의 사상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며, 더불어사는 인정공동체였다. 인정공동체는 어린이와 어른들이 함께 사랑을 나누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인 평화와 생명,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정공동체 회복의 중심에 교회가 있어야 하겠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 교수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