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생애 막바지는 권력의 정점인 예루살렘을 향하는 것이었다. 이를 제 나름으로 눈치 챈 제자들 사이에서 권력 다툼이 일었다. 예수께서 영광 받으실 때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이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다”(막 10:45). 대속의 제물로서의 섬김 즉 속건 제물로서의 섬김을 말씀하신 것이다.
구약에서 속죄제의 경우 제사장은 제물을 바치는 자를 대신하지만, 속건제의 경우 제사장은 하나님을 대신한다. 예수께서 속건제의 제물이 되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보상하기 위해 친히 제물이 되신 것을 말한다. 제주가 죄 지은 자에게서 제물을 받아 보상받지 않고, 자기를 희생 제물로 삼아 죄 지은 자의 죄를 보상하신 것이다. 이처럼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섬김은 자기를 비참하게 하면서까지 베푸신 섬김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바로 그와 같은 대속의 은혜 때문이다. 누가 감히 이와 같은 섬김을 흉내 낼 수 있겠는가. 그러함에도 우리의 섬김은 주님의 섬김을 모범으로 삼아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국민을 섬기겠다’며 읍소하고 국회의원이 된 선량들. 그 마음이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압살롬처럼 유권자의 마음을 도적질하기 위한 위장술이었는지 각자 자기행위에서 드러날 것이다.
삼일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