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아이들이 신음하고 있다. 해맑은 웃음기는 사라지고, 원망 섞인 눈초리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세상을 향해 “우리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그러나 어른들의 세계에서 이들의 처절한 ‘피의 절규’, ‘한의 소리’는 세상의 것들에 묻혀버리고, 어른들이 정해 놓은 규정대로만 살아갈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 틀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사회적 처벌에 몸과 마음이 멍들어 죽어가고 있다. 때로는 어른들의 무관심에, 혹은 혹독한 관심에 고사리 같은 아이들이 채 펴보지도 못한 채 허리가 꺾인다. 그래도 조그마한 새장 속에 갇힌 아이들은 대답 없는 외침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살고 싶다”, “나도 꿈꾸고 싶다”, “우리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무언의 말로 외친다.

오월 가정의 달 우리 아이들의 ‘피의 절규’이다. 그렇다. 사람 되고자 하는 아이들, 그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부모의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폭행을 당하고 있다. 이 폭행은 부부의 갈등, 사회생활 현장에서 일어나는 갈등으로 인해, 아이들이 화풀이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아이들도 ‘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부모에 의해서 ‘죽임’으로 내 몰리고 있다. 올해만 해도 많은 아이들이 부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그것도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목사이며 교수인 아빠와 계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아이도 있다. 또 목사 부부가 입양한 아이가 학대를 받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성직자인 잘못된 목사가 이런데 세상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계모가 아이를 폭행해 갈비뼈골절로 폐부를 찔러 사망한 ‘울산계모사건’을 비롯해, 식사도중 아이가 김치를 남겼다는 이유로 폭행을 가한 ‘인천어린이집 사건’, 초등생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부천초등학생 토막사건’,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건, 울산 울주 여아 학대 사망 사건, 부천 백골 사건 등등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무서운 아동학대의 사례는 인간성을 상실한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전히 20여명에 가까운 미취학 아동들의 생사는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드러난 것만 이정도인데, 그동안 감춰지고 철저히 은폐된 사건들은 얼마나 심각할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그만큼 아동학대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병적인 문제로 대두되어 있다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할 말을 잊어버리게 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공개한 ‘2015 전국 아동 학대 현황’에 따르면, 아동학대는 2011년 6058건, 2012년 6403건, 2013년 6796건, 2014년 1만27건, 2015년 1만1709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5년간 아동학대 사건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75.5%가 친부모였고, 계부모와 양부모까지 합하면 80%에 달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잔악무도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의 아이들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물로 분 가정에서 폭력에 시달이고 있다. 심지어 아동학대는 단순히 폭력으로만 그치지 않고, 최근에는 살인에 이르기 까지 가정이 파괴되는 일이 쉽게 자행되고 있다.

아이들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가정에서 침해당하는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간구원의 실현이다. 아이들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신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아이들의 인권이 가장 존엄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신의 형상’, ‘피조물’이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떠한 폭력 앞에서, 아니 부모라 하더라도 짓밟을 수 없다. 그것은 아이들도 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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