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근자에 동역 자의 부탁에 의해 장례식(葬禮式) 집례를 하게 되었다. 처음 부탁을 받고는 그간에 집례 할 때마다 고민하면서 결단을 못 내리고 가득 품어만 왔던 갈등들이 한꺼번에 엄습해 오는 듯 했다. “장례식(葬禮式)?” 등, 우리 개신교인들이 사용하는 상례(喪禮) 용어들은 적절한 것일까? 우리 개신교의 예식서들은 하나 같이 상례식(喪禮式) 용어들만은 우리의 전통문화에 따라야 한다는 것일까? 예배의식만 적용하면 그 용어들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용어들은 누가 어떻게 언제부터 정하였기에, 지금까지 우리 개신교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을 갖다보니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상례식(喪禮式) 때마다 고민 되는 점에 대하여, 미성숙 하다 할지라도 이번만은 적용해 보기로 결단하고 집례를 하겠다고 동의 하였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필자가 제시하는 용어들이 일반화 되지 않았고, 아직은 검증되지 않았으며, 공식화 되지 않은 것이기에, 흥분감을 감출 수 없음과 같이 문제점이 제시 될 수 있다. 하지만 신앙(信仰) 안에서 좀 더 성경에 근접한 용어를 통하여, 복음 전도가 되도록 해야 하겠다는 열망이 필자를 사로잡았다.

국어사전에는 상(喪)이란? “거상(居喪)의 준말로 부모, 승중(承重)의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와 맏아들의 상사(喪事)에 대한 의례라고 한다.” 이때의 喪(상)에 대하여 한자사전은 죽음 상, 상사 상, 복 입을 상, 구길 상, 없어질 상, 잃어버릴 상 등으로 불린다. 따라서 우리 문화의 표현의 “喪(상)”에서는 “죽음”이란 말을 외면 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성경적으로 적합한 용어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위의 거상(居喪)이란? “상중(喪中)에 있다.”는 말이며, 승중(承重)이란? “장손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조상(祖上)의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 개신교에서는 상례(喪禮)라기 보다는, 영혼(靈魂)은 이미 거룩한 천국에 들어 가셨고 그의 육체(몸) 역시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때)까지 안식[安息(잠)] 한다는 의미에서 성안(聖安) 곧 “거룩한 안식(安息)”이란 표현으로 성안례(聖安禮) 또는 성안식(聖安式) 이라 함이 성경에 근접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집례를 진행 하였다. 갑작스런 용어의 등장으로,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들도 보였으나, 예식사(禮式辭)에서 성경적 의미로 설명을 하고 나니 모두가 밝은 표정으로 동의함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 내용의 설명의 시작은 이러했다. 기독교 상례(喪禮)에는 보편적으로 입관식(入棺式), 발인식[發靷式 .장례식(葬禮式)], 하관식(下棺式)이 있으며 여기에 임종식(臨終式) 등을 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례(喪禮)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유교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성경적인 가르침과 충돌된다. 물론 개신교에서도 숙고 끝에 정해 인용해 왔으리라 생각하지만, 유가(儒家)나, 이를 적극 반영하고 있는 불교(佛敎) 등의 상례용어(喪禮用語)는 모두 죽음[사망(死亡)]을 전재로 하고 있다. 그럼으로 우리 개신교도들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도입 하는데 아쉬움이 있다. 분명히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말 할 때 사망[死亡(죽은)] 자와 생명(生命) 있는 자로 증거 하지 않는가?(요 5:24-29)

다음 호에 계속

(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0-21)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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