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라고 제자들이 요청했을 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눅 17:5-10). 이어서 주인과 종의 관계를 비유로 들고 있다. 예수께서는 왜 ‘작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고 했을까? 이유가 있다. 겨자씨가 작다고 얕볼 일이 아니다. 겨자씨는 작기는 하지만 생명을 품고 있다. 한 우주가 그 안에 들어 있다. 제자들은 ‘큰 믿음’을 원했다. 하지만 아무리 커도 생명이 없다면 쇄락의 길만이 기다리고 있다. 예수께서는 큰 것을 바라며 사신 분이 아니다. 생명을 품고 사신 분이다. 그래서 생명의 기적을 일으키신 분이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기적을 일으키신다. 당신의 육신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당신이 뿌린 생명의 씨앗은 지금도 발아해서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예수께서 탄생하실 당시 헤롯대왕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보다 두 배나 더 크고 화려하게 지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다. 그런 헤롯에 비하면 예수께서는 작은 겨자씨 하나에 불과하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이다.

종의 이야기는 믿는 이들의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 즉 사회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종으로 인식해야 한다. 종에도 등급이 있다고 보면 어떨까. 최상급 등급은 주인이 쓰기에 가장 편안한 종일 것이다. 최하 등급은 주인이 일을 시킬 때마다 말대꾸 하고, 토를 달고, 핑계 대고, 거짓말하는 종이다. 기가 센 종은 내다 팔거나 버리고 싶을 것이다. 봉사도 그렇다. 가장 훌륭한 봉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쓰시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내가 작아지는 데 있다. 이웃을 향한 봉사 가운데 가장 좋은 봉사는 어떤 큰일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쓰기에 불편하지 않게 내가 작아지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봉사할 때도 그래야 한다. 큰 믿음 구하지 말자. 생명이 있는 믿음을 구하자. 낮아질수록 기쁨은 커진다.

권력 역시 처음 시작할 때와는 달리 점차 자기를 부풀리고 강화시켜서 지배하려는 속성이 있다. 민주주의 시대에 자신을 군주로 여기는 지도자가 있다. 그런 지도자를 둔 나라는 늘 편치 못하다. 자기가 주인으로 알고 ‘국정이 마비된다’는 식으로 매사에 이유를 달며 말대꾸하는 권력은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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