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어이, 저기 하나꼬 있더라. 너희들 조심해. 하나꼬 유명한 여자야.” “유명하다. 뭐가?”
“스즈끼 한테 가서 물어라. 노무계에서 하나꼬 거기에 말뚝을 박았더라.”
“히야, 말뚝을 박았다?”. “거기다가?”. “술맛 떨어지는 소리 좀 그만해라.”

밖으로 나온 금화는 허청허청 마당을 걸어 나갔다. 문가에 켜진 붉은 종이등 옆을 지나 금화는 걸음을 멈추었다. 어떻게 저 세월을 살아낼 수 있을까. 밟으면 발이 빠질 듯이 푸석푸석 무엇인가 가슴속에서 무너져 내린다. 이제 나는 그를 기다릴 여자가 못 된다. ~ 술병을 든 금화가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방파제로 걸어 나갔을 때는 밤이 늦어서였다.

“거 누구야?” 경비원이 다가왔다. “나다, 이놈아.” 금화의 발걸음이 비틀거린다. 그녀는 술에 취한 눈으로 경비원을 올려다보았다. “너! 네가 바로 그 여자 아니냐.”
“이놈이. 인사도 없는 놈이, 보자마자 말투가 왜 이래.”
금화의 기세에 움찔하면서 경비원 사내가 말했다. “여긴 이 시간에 왜 돌아다녀?”
“술 마신다.”
“여기가 술 먹는 데냐? 들어가라,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 흔들리는 손길로 담배에 불을 붙인 금화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네가 술 사줬냐? 시답지 않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넌 저기 가서 이 자식아, 불알이나 달달 털면서 보초나 서” ~.

금화의 죽음이 알려진 건 이틀 후였다. 바다에서 그녀의 몸이 떠올랐다. 투신자살이었다. 물에 부어오른 그녀의 몸은 그렇게 가고 싶던 조선으로 떠나지도 못하고 섬 쪽으로 밀려와, 파도에 밀리면서 너울거리고 있었다. ~ “하나꼬가 남긴 유서입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것이라기에 가져 왔습니다.”

“하나꼬가 아니오.” 명국의 큰소리에 놀란 야스꼬는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명국을 바라 보았다. “하나꼬가 아니라. 금화요. 금화는 한 번도 ‘하나꼬’인 적이 없던 여자요!”~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적어놓고 있었다. 한자로 금화(錦禾)라고.(출처 : 한수산 장편소설. 군함도)

그런데 지금 일본 초등학교 모의고사에서 “독도 불법점령한 나라는?”이라는 내용의 문제가 출시가 됐다”고 하는데 이는 “대한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것을 주입시키고 있음인데, 그 목적과 끝은 무엇일까?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아량이 많아서일까? 그래서 무감각해 보이는 것일까? 힘이 없어서 일까?

‘하시마’라는 지옥(地獄)섬에서의 강제노동은 물론 일제의 고문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의 잔악상을 보여준다. 백성들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나라를 잃은 백성들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북괴가 육이오 남침을 감행해 왔을 때도 참회를 모르는 일제의 총리 ‘요시다 시게루’는 무릎을 치며 “이제 우리는 살았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간, 정말 야비한 인간들이 아닌가?

‘아브람’은 조카 롯을 구해 왔을 때, 소돔 왕이 사람만 내게 보내고 모든 것을 다 가져가라 했으나, 아브람은 “~ 천지의 주제이신 하나님께 맹세하노니 네게 속한 것은 한 실이나 한 신들메라도 취하지 아니하리라 ~” 하였으니 롯 등을 구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지 전쟁에 승리했다 해서 소돔 나라의모든 것을 자신 것으로 삼지 않겠다는 의지표현이다. 정복주의와는 그 성격을 전혀 달리 한다. 그러나 일제는 어찌 했는가. 그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피해를 준일이 없음에도 침탈을 일삼아 왔었음에도, 지금까지 그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다시는 ‘금화(錦禾)’ 등과 같은 고통과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북괴가 전쟁 도발을 하지 못 하도록 적극적 방어를 함은 물론 평화통일에 박차를 가하여 주변국으로부터 침략을 막고, 다시는 백성들이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 모두는 숙고(熟考)에 숙고를 해야 한다. 나라가 망하면 힘 있는 자들은 그럭저럭 살아갈지 몰라도 힘없는 백성들의 치욕은 물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창 14:23)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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