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수많은 사람들이 자녀교육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사실 상당 부분 이 이생의 자랑을 위해서 입니다. 어디 대학을 나오고, 어느 직장에 들어가고 하는 것들이 다 이생의 자랑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식욕, 성욕, 출세욕 등 이런 세상적인 모든 욕구들이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 힘이 없게 얽어매는 것들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고 우리 육체의 정욕이 우리의 영혼을 거스려 늘 싸우는 것이며 그래서 늘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인식한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라며 탄식하고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며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이기기를 원하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고 자신을 통제해야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는 결코 육체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경주는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것을 잡으려고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빌3:12)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께 잡힌바 되었습니다. 자기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과 은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붙잡으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방인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행9:15)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을 때에는 반드시 부르심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막연하거나 푯대가 없는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자신을 부르신 사명을 깨달아 그 사명에 순종하며 열심히 쉬지 않고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믿음의 경주를 합니다.(빌3:14) 바울은 부름의 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믿음의 경주 뒤에 있을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마25:34, 계11:18)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약속을 받았으나 그 약속에 동참하기 위하여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좇아가노라."라고 하는 사도 바울처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먹어도 주를 위하여 먹고, 먹지 않아도 주를 위해 먹지 않으며,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 고 말했습니다. 그의 마음 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그가 그리스도에게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실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자세인 것입니다. 진실로 주님을 알게 되면 주님을 위해 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분명한 미래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앞을 향해 달려가는 신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종하여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하면 성령님께서 끊임없이 달릴 수 있도록 힘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경주를 하지 않는다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6)고 하신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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