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동교동 삼거리 일대 재개발을 둘러싼 공권력에 맞선 ‘칼국수집 두리반’의 유채림.

그가 전근대적이고 부조리한 한국 사회의 공권력에 대한 고발과 다른 시각으로는 불신과 믿음의 경계선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담은 <넥타이를 세 번맨 오쿠바>란 책을 내놓았다.

계간지 <작가들>에 1년동안 연재한 장편소설인 <넥타이를 세 번맨 오쿠바>는 강간 살인범으로 몰려 15년 옥살이를 하고, 39년 만에 무죄 판명된 정원섭 목사(82세, 작중 정원탁)의 실화에 굴곡진 한국 역사를 담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춘천에서 태어난 주인공 정원탁은 치과의사였던 아버지로 인해 ‘어금니’라는 뜻의 일본말인 ‘오쿠바’로 불렸다. 한때 신학교를 다녔던 오쿠바는 현실을 직시하고 어릴적 꿈인 사진작가가 되었지만, 첫째 아들의 죽음으로 중년에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와 만화가게를 차렸다.

그러던 중 1972년 가을, 춘천 어느 마을에서 만화방에 간다고 나갔던 9살 여자아이가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전 국민은 분노했고, 사건은 오리무중인 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작은 마을의 사건은 대통령 관심까지 더해져 불같이 번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열흘 안에 범인을 잡아라”고 시한부 검거령을 내렸다. 대통령까지 나서자 경찰과 검찰, 사법부는 마음이 급해졌다.

결국 그들은 희생양이 필요했고 만화가게 주인 정원탁이 재물이 됐다. 자신의 무죄를 거듭 주장했지만 사흘간의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죽였다”고 자백한다.

결국 아무 잘못이 없었던 오쿠바는 10일만에 체포 되어 15년간의 옥살이를 하게 됐다. 평범한 만화방 주인에서 열흘만에 여아 강간살인마가 된 오쿠바는 기가 막혀서 한번, 숨 막혀서 한번, 억울해서 한번 무기형을 받을 때마다 그는 넥타이를 맸다. 이 과정에서 신을 부정하며 세 번의 자살시도로 거대한 분노와 처절한 슬픔을 표출했다.

성경에는 오쿠바의 경우와 꼭 닮은 이야기가 있다. 구약성경에 있는 욥기의 내용은 신이 욥이라는 자에게 건강과 자식과 재산을 모두 잃는 고난을 주어 그의 신앙을 시험했다. 모자람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며 목사를 준비했던 오쿠바의 삶은 욥의 그것과 궤적을 같이한다. 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았던 욥과 달리 오쿠바는 “악이 신을 압도했다. 신은 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 완전히 실 패했다. 그 무기력한 신을 왜 믿어야 한단 말인가!”라고 의심했다.

자살시도에도 가까스로 살아남은 오쿠바는 자신을 위로하고 돕던 사람들에게서 “인간의 얼굴을 한 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느끼고 신앙으로 회귀했다. 39년만에 무죄확정을 판결받은 오쿠바가 다시 만난 신은 통제보다는 자율을, 징치보다는 용서를 존중하는 존재였다.

오쿠바는 모진 삶 가운데에서도 무려 39년의 세월이 지나 마침내 진실이 밝혀진 날 “무죄 판결이 신의 은총인 것이 아니라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해준 것이 은총”이라고 말했다.

오쿠바의 일생은 지난 80년 동안 우리 한국인이 겪은 역사와 현실의 한 표본을 엿 보게 한다. 광복부터 그가 옥살이를 한 뒤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문을 두드린 그의 모습은 역사와 권력에 신음했던 한 없이 나약했던 우리의 자화상이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용산 철거민 사망, 세월호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과 맞물리는 공권력의 부조리를 말하고 있다. 그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또 다른 ‘오쿠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결국 <넥타이를 세 번맨 오쿠바>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을 인간 공동의 상처로 생각해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유 채 림 작가
저자 유채림 작가는 “판타지가 아닌 소설은 언제나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비록 살인 누명이라는 골격을 제외하면 모든것이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남원에 계신 오쿠바 어르신이 아니였다면 이 책은 나올 수 없었다”면서 “그러니 오랜 세월 모욕을 견뎌온 그분의 삶에 이 소설이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유 작가는 또한 “부디 이 책이 많이 팔려, 가난은 강물 곁에 누워 늘 같이 흐른다던 시인 나해철의 절규처럼 ‘진지’가 없는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진지’를 열어주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정원섭 목사의 이야기는 이미 영화 <7번방의 선물>로도 만들어져 한국인들에게 진지하면서도 슬픈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유채림 작가는 <금강간 최후의 환쟁이>에서는 민족 비극인 6.25를 배경으로 너무나 환상적인 글로 적어 비극을 낭만으로 만들었고, <매력만점 철거 농성장>에서는 그 힘든 재개발 철거 과정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풀어 눈물과 재미를 안겼다.

유채림 지음/ 새움 출판사/ 1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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