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한달동안 한국교회는 6.25 한국전쟁 제66주년, 분단 71년을 맞아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6.25상기 기도회를 일제히 드렸다. 특히 금년 6월 6.25상기기도회는 남북한 민족의 화해의 기도회라고 하기보다는 60년대나 볼 수 있었던 반공궐기대회를 방불케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것은 6월을 맞아 각 교회에서 외쳐진 설교 역시 여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이제 매년 6월달에 열리는 6.25기도회는 한국교회의 반공궐기대회가 되었다. 연례행사처럼 열리고 있다. 그것도 분단의 중심에 있었던 한국교회가 가던 길을 멈추고, 분단극복과 민족통일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민족통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민족통일이 우리 민족에게 있어 절실하고, 한민족의 역사적 운명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대부분 목회자는 강단에서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민족통일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분단고착화를 위한 설교하기에 바빴다. 각 단체의 연합기도회 역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못했다. 어찌 보면 성경이, 아니 교회가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에 속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일부 목회자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교회가 통일논의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분단을 이용해서 자신의 교회를 지키고, 권력을 유지한다면, 그것은 한민족의 통일염원을 배신하는 반민족적인 행위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130년 동안 영미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분단 상황을 고착화하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영미지배자의 식민지신학과 근본주의 신학이 최고인양,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다.

일부 교회의 목회자는 한반도의 분단, 아니 민족의 분단을 자신의 밥벌이로 이용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분열과 갈등에 익숙해진 나머지,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 화해의 종교, 사랑의 종교, 희망의 종교라는 사실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다. 잔인한 6월을 맞아 목회자들의 입에서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말을 외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평화와 화해라는 추상적인 말이 떠나지를 않고 있다.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한 기도도 드린다. 그러나 이 기도 속에는 화해와 평화에 대한 의지보다는, 북한을 적대시 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분명한 것은 교회가, 아니 성경이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분단이데올로기는 해방 이전에도 있었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통일문제와 민족문제의 관심 밖에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민족의 요구이며, 염원인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응답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 민족분단은 많은 모순을 가져다가 주었다. 그리고 남과 북의 많은 사람을 괴롭혔다.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괴로움을 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남과 북이 하나되어야 한다는 말에 열을 올린다.

현재의 상태에서 남과 북이 잘 살수 있다면, 굳이 하나가 되어 살아야 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서로의 갈림으로 인해 우리민족이 잘살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너무나 잘 안다. 남북분단은 비인간화가 가져다준 결과이다. 따라서 일부 교단과 교회는 통일운동에 앞장서는 국민들에 대해서 ‘빨갱이’로 매도하는가 하면, 통일운동에 뛰어든 목사를 ‘빨갱이 목사’라고 매도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담긴 화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의 참뜻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민족공동체 갱신, 민족통일의 과제로서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을 선교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복음의 요청이며, 선교의 요청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복종이다. 이것만이 한국교회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고, 예수님의 역사현장에서 사랑과 정의, 평화가 흘러넘치는 통일된 한민족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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