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3 총선에서 한국교회의 정치세력화가 좌절된 가장 큰 이유는 루터가 주창한 ‘정교분리’이다. 루터의 정교분리는 권력으로부터 종교를 보호하고,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루터의 ‘정교분리’는 종교와 권력이 야합, 타락해 가는 교회를 보고, 극약처방으로 내놓은 것이다. 당시 중세교회는 정권을 장악하고,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부패할 만큼 강대한 세력이 되었다. 이것이 그대로 한국교회에 이식되었다.

영미선교사들이 한국선교를 시작하면서, 이들에 의해 ‘정교분리’가 주창되었다. 그것은 영미의 팽창주의와 일본의 식민지세력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한국기독교의 일본 식민지세력의 확장에 대한 방해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 선교사들이 먼저 제안한 것이 바로 ‘정교분리’이다. 이것은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영미선교사들로부터 정통보수주의 신학과 신앙의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4.13총선에서 아무렇지 않게 “왜! 목회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느냐”, “왜! 기독교가 정치에 관여하느냐!” 등등의 말을 내 뱉으며, 한국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방해했다.

일본 식민지세력과 야합한 선교사들이 한국선교를 시작하면서, ‘정교분리’를 내세운 의도는 분명 한민족의 의식화와 독립운동을 막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이의가 없다. 그러면서 영미선교사들은 일본 식민지세력에 협력하며, 가난한 대한민국의 백성들의 독립운동을 철저하게 막았다. 그것은 3.1만세운동 당시 선교사들이 사이토 총독에게 보낸 글에 잘 나타나 있다.

“기독교가 반란선동의 소굴이라고 지정된 감을 주는 것은 선교사로서 선교상 막대한 이해관계가 있다.…(중략)…우리는 교회 역임원 및 교사에게 권세에 복종함을 가르치고, 교회는 정치운동에 간여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조선의 천박한 백성들을 뭉치게 했는가(?) 오늘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야 한다. 그것은 3.1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이 아니다. 그들은 만세현장에 없었다. 3,1만세운동의 현장에 있었던 기독여성과 기독농민, 학생, 그리고 여기에 동조했던 피압박민족의 가슴에는 역사의 방향을 느끼는 ‘촉’이 있었다.

일본 식민지세력의 총칼 밑에서 3.1만세운동이 좌절된 이후, 한국기독교는 이 땅의 피압박민족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지혜의 길을 트는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가난한 백성들을 향해 싸구려 ‘구원’만을 강조했다. 심령대부흥운동이라는 형태로 인간을 이원화하고, 현실을 도피하는 이기적 타계주의로 휘몰고 갔다. 한마디로 사자의 이를 뽑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영미선교사들이 주창한 ‘정교분리’는, 한국기독교가 한국역사와 문화와의 단절을 가져왔고, 한국기독교는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등 배교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지난 4.13총선에서 보수적인 교회지도자들이 이루려고 했던 기독교의 정치세력화가 결국에는 ‘정교분리’로 인해 좌절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마디로 영미선교사들이 주창한 ‘정교분리’의 덫에 걸린 것이다.

분명 정교분리를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루터가 주창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교회의 예언자적인 사명을 망각하게 하고,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가로막고 있다는데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다 한국교회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동성애법을 비롯하여 성소수자 인권법, 차별금지법을 막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교회가 스스로 살기 위해서는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정교분리’가 비겁한 자의 자기방어의 방패가 되어서는 안된다. 비겁한 자들은 그동안 안주하며, 민족의 수난과 유리된 채, 군살이 되어 버렸다.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스스로 살기 위해 한민족의 문제가 바로 나와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민족사의 문제에 참여하려는 그 문을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오늘 민족의 염원이며, 소원인 통일의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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