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풍랑 이는 밤바다에 나를 던져 넣었을까
불면의 밤은 고래 뱃속이다
낮의 구름에 비를 예감하였더니
큰 폭풍 일었다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어겼다

고래는 바다를 가르며 질주한다
미끈거리는 밤의 위액 속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린다
몸을 공처럼 말면
밤의 발에 차인다
온 밤을 굴러다닌다

하나에서 백까지 세다
주기도문 사도신경에 당도한다
눈썹 아래 초승달 뜨고
두 볼에 달빛이 흐른다
모든 울음은 고백이다

헤드라이트 불빛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들
제풀에 지쳤는지 무릎을 꿇고 만다
고래가 나를 뱉어낸다
잠 속은 니느웨고
잠 밖은 고래 뱃속이다.

▲ 정 재 영 장로
제목처럼 요나의 이야기를 차용한 작품이다. 요나의 사건 그대로가 아니라 화자 자신의 고백이다. 다만 고래라는 은유와 상징을 통해 변용된 자아의 고백인 것이다.

첫 연에서 밤이라는 시간은 고래의 뱃속의 상황이다. 이것은 밤과 낮을 구별하는 시간이 아닌 상황적인 밤이다. 그 원인은 명령을 어긴 것 때문이다. 상황이란 신의 지시의 말, 신의 계명이나 지시를 불순종한 심리적 표현이다. 밝음이 아닌 어둠을 상징하는 모든 상황이다. 신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말한다.

2연에서 밤은 화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질주하는 폭력적 성격을 가진 모든 것을 지칭한다.

화자는 별수 없이 피동적인 자세로 그 상황 속에 존재한다. 몸을 만다는 말은 그 상황을 순응하려는 인간의 자아의지다. 그것은 차이고 굴러다니는 피학대적인 단계로 변할 뿐이다.

3연에서 그런 상황을 신앙적인 방법으로 탈출하려는 의미를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라는 말로 대치시킨 변용을 시도하고 있다. 타인의 의지에 의탁하려는 모습이란 자아로 해결될 수 없는 밤으로 부터의 도피를 타인의 도움으로 해결하는 자세다. 자아의 무력함을 깨닫는 동시에 신에게 의지하려는 회귀를 보여준다. 이것이 신앙인 것이다. 자아의 회복은 회개를 통한 치유다. 초승달의 달빛은 신의 은총에 대한 이미지다. 통회하는 마음을 울음의 고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헤드라이트 불이 없다함은 미래의 암담한 불확실성이다. 그런 신에 대한 믿음으로 고민들이 정리되는 것을 무릎을 꿇는다고 표현한다. 결국 고래는 그 어둠의 밤을 상징하는 배에서 화자를 뱉어내고 만다.

니느웨가 부딪치어야 할 일은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잠 속의 상황이고, 반대로 불신앙의 현실은 고래 뱃속의 고통과 같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신앙적인 모습을 요나의 사건을 통해 상징적으로 변용해주고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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