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창 훈 목사

우리가 인생길 살아가는 동안 두 가지 금기사항이 있는데 체념과 자만이다. ‘나는 재주도 없고 그릇도 작아 별 볼일 없어’라고 체념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이고, ‘나는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재주도 많고 환경도 좋고 부자야’하고 자만해지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고 믿음 안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에 대해서 교훈을 받도록 하자.

첫째,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분량이 있음을 알고 인정해야 한다. 본문 말씀 20절에 보면 ‘큰집에는 금과 은과 나무와 질그릇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집(교회)에서 일하는 일꾼들 중에는 제각기 다른 그릇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질 그릇 등이 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일꾼들마다 그릇이 다름을 말씀해주고 계시다.

우리가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한 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한 성령님의 은혜 가운데서 믿고 구원을 얻고 일꾼으로 쓰임을 받을 때 은혜로 수용해야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마다 제각기 그릇이 다르고, 받은 재능이 다르고, 받은 은사가 다르고 주님이 주시는 직분이 다른 것을 알고 은혜 중에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리할 때 봉사와 헌신에 있어서 자유와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된다.

둘째,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신 분량대로 아주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본문 말씀 21절에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여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했다.
옛날 시골에서 보면 아무리 큰 그릇일지라도 망가지고 쭈그러지고 더러우면 소나 돼지에게 퍼주는 구정물통으로 쓰고, 아무리 작아도 깨끗하고 귀하고 예쁜 그릇은 잘 보관해 두었다가 결혼잔치나 손님이 올 때 아주 귀하게 사용한다.

그렇다. 아무리 작아도 사람보기에 좋고 깨끗하고 귀하면 왕실에 들어가서 왕이 먹는 밥상에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릇마다 자기를 깨끗이 하되 22절 말씀처럼 ‘청년(젊음)의 정욕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고, 의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이루고 이것을 좇아 살면 하나님이 귀하게 쓰신다는 것’이다. 국그릇이든, 밥그릇이든, 간장그릇이든, 숟가락이든, 젓가락이든,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서 쓰임만 받으면 귀한 그릇이 되는 것처럼 우리 각자가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기를 소원한다.

셋째,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신 분량을 다 모르기 때문에 각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4장 7절 말씀을 보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랬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난 후 주님 앞에 서기 직전까지 복음을 위해서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사명의 길을 다 감당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는 말이다.

우리가 은혜 중에 주님을 믿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일꾼이 되었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그릇의 분량이 어디까지인지 또는 하나님이 내게 주실 직분이 어디까지인지 더 나아가 하나님이 내게 주실 은혜의 분량이 얼마 만큼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명을 마감시키는 순간까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믿고 은혜 체험하고 직분을 받자말자 내 그릇을 키울 수 있는데 까지 키우는 것이다. 내가 받을 수 있는 은혜의 분량까지 힘쓰고 애쓰고 사모하는 것이다. 주님이 주실 직분을 다 받을 때까지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제한시켜 체념하는 것은 금물이다. 반대로 너무 자신 만만하여 자만하거나 교만해지는 것도 절대로 금물이다.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키우고 다듬어서 주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한다.

동아교회 담임•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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