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겨울 내내 하시마는 색깔이 변하지 않았다. 난리는 석탄가루에 뒤덮여서 섬 전체가 검다. 치솟은 철근콘크리트 아파트와 그 밑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고 겨울을 나는 골목길만이 검고 을씨년스러운 것은 아니다. 마른 풀들도 꺼멓게 탄가루를 뒤집어 슨 채 땅바닥에 넘어져 겨울을 나고 있었다. ~ “조선이 어짜고, 일본이 어짜고, 나 그런 거 다 잊어 불고 살기로 혔다. 있으면 묵고 읎으면 굶고, 나 그라고 살란다. 난 그런 놈잉께, 잘난 소리 헐라먼 느그들 끼리나 혀라.” 캡라이트를 맡기고 번호표를 내던지듯 건네주고 나서 만중은 횡 하니 앞서갔다. 학철이 이맛살을 찌뿌리며 물었다. “쟤가 요새 왜 저런다니? 본 건 눈으로 흘리고 들은 건 귀로 흘리라지만 그렇게 살기도 쉬운 건 아닌데.”

시커멓게 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밖으로 나서던 사내가 떠들어 댔다.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걸 뻔히 알면서, 와와 소리만 지르다가 저쪽에서 쳐들어오니까 푹석 주저앉았으니, 떡이 되게 얻어맞은 거밖에 뭘 얻었냐 말이다.”

충식이었다. 말로만 앞장서서 싸우자고 핏대를 올리다가도 돌이라도 날아오면 어느새 숙사 안으로 엉덩이를 감추던 충식이는 그래서인가. 그때의 일을 뒤집기라도 하려는 듯 요즘 들어 부쩍 왜놈. 왜놈 해대면서 말이 많아졌다.

앞서 걷던 만중이 걸음을 멈추더니, 돌아서서 충식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탁 쳤다. “니가 시방 그걸 말이라고 허냐?”

“왜 사람을 치고 이래.”

“참자. 참자하고 살라 했등마 천불이 나서 못 참겠네.” 만중이 탄가루를 뒤집어쓴 시커먼 얼굴로 충식을 막아섰다. “같은 말이라도 어 다르고 아 다른디. 너 시방 먼 소리를 씨부리는 거여? 절로 터진 아가리라고 헐 소리 안 헐 소리 지껄이지 말고, 가만 자빠져 있어. 알겄어?”

기세에 놀란 충식이 가느다랗게 찢어진 눈을 더 가늘게 떴다.

“아따. 왜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고 그런대?”

“뭣이 으째야? 달걀로 바위치기? 푹석 주저앉아?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혔어. 이놈아.”
“이 사람 보게 말에 뼈가 있네.”

“뼈만 있냐? 까시도 있고 털도 있어야.”

“자네 나한테 뭐 심정 상한 일이라도 있어?”

“있제. 그 빗속에서 우리가 개 패듯 얻어터질 때, 니가 어디 있었는지 모른 줄 아냐?”

“그래. 나 뒷간에 있었다. 그게 뭐 어떻다고 시비야.”

“똥이 나오디야? 니 동포들은 피를 철철 흘림시로 나자빠지고 있는디, 니는 뒷구녕으로 똥이 나오드냔 말이여?”(출처 : 한수산 장편소설. 군함도)

어떤 자들을 일컬어“ 개(犬) 돼지(豚) 만도 못한 인간들”이라 할까? “천황폐하 만세!”의 망발(妄發)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99%의 민중은 개·돼지라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는 고급 관리(官吏)들. 도대체 국민의 공복(公僕 = 공공사회의 심부름꾼) 임을 잊고, 일제시대(日帝時代)의 관리(管理 = 사람을 통솔하고 지휘 감독함) 행세를 하려는 것일까? 그러한 자들이 인재로 인정받는 ‘대한민국’이라면, 우리 자녀(子女). 손(孫)들이 또 다시 일제 36년의 생지옥(生地獄)과 같은 노예(奴隸) 생활로 전락 하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 22:15)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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